나는 이 책에 헌신했다.
이 책 <두 번째 산>은 한마디로 진부하다.
그리고 읽기 힘들다.
전작 <보보스>, <인간의 품격>으로 호평을 얻은 뉴욕타임스 저널리스트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의 신작이라 큰 기대를 가지고 책을 봤다. 마지막 작가의 감사의 말까지 588페이지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두께였지만, 전작 <인간의 품격>의 후광이 있어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은 내내 후광은 사그라들고 눈꺼풀은 내려앉고 아까 읽은 문장이 무슨 뜻인지 파악하느라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한마디로 몰입하기 힘든 책이었다. 그래서일까? 꾸역꾸역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읽기 고통의 계곡을 지나 완독 정상을 오른 듯한 독서의 색다른 기쁨을 느꼈다.
물론,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훌륭하다.
그리고 공감한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시대정신의 대세로 자리 잡고, 개인 중심의 도덕 체계가 당연해진 요즈음. 개인은 공동체로부터 분리되고, 자아실현의 욕망만을 쫓게 됨으로써, 따라오게 되는 상실감과 외로움은 계급적 차별주의와 정치적 부족주의 등 다양한 사회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에, 저자는 인생에 있어 자아(ego)를 세우고 자기를 규정하고 무언가를 획득하는 첫 번째 산을 지나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고 타인에게 헌신하는 두 번째 산을 올라야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가 나아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 메시지는 작가의 전작인 <인간의 품격>에서도 했던 이야기다. 그때는 '아담 1', '아담 2'로 비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첫 번째 산과 두 번째 산이 반대된다기보다 두 번째 산에 오르는 것은 첫 번째 산에 오르는 것에 이어지는 또 하나의 여정이며 성장하는 삶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초개인주의에서 관계주의로 가는 여정이야 말로 개인과 공동체가 가야 할 방향이며 그 과정에서 개인은 어떻게 마음과 영혼이 이끄는 소명의식으로 헌신하면 되는지를 설득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메시지 자체는 공감하지만, 그 설득 과정이 너무 지루하고,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다고 느꼈다.
이 책은 첫 번째 산과 두 번째 산이 어떤 의미인지, 무슨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두 번째 산에 올라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PART1을 지나 두 번째 산을 오르기 위해 직업, 결혼, 철학과 신앙, 공동체 네 가지에 대해서 헌신의 방법과 기쁨을 설명한 PART 2~PART 5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개인주의를 넘어 관계주의로"라는 결론 챕터에 이르러 험난한 산행을 마치게 된다.
<인간의 품격>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PART1은 속세의 욕망으로 가득 찬 개인의 일상을 한번쯤 돌아볼 수 있는 생각거리를 주고 읽는데 큰 무리가 없다.
읽기의 고난은 PART 2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마 저자의 의도는 직업, 결혼, 철학과 신앙, 공동체에서 두 번째 산을 오른 사람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의미를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례들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뒷받침 하기에는 허약하고, 공감하기에는 너무 지엽적이며 극단적이고 개연성이 떨어지며, 내용은 맥락과 중심을 잃은 채 헤맨다.
사랑은 주의력의 질이다. 몇몇 경우에 어쩌면 흘낏 쳐다보는 사람 쪽이 나이가 조금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그 쳐다봄 속에는 '봐! 내 기쁨이 나타났어!'와 '아, 이거 머리 아픈 일이 생기겠네'라는 상반된 두 감정이 뒤섞인 어떤 예감이 묻어 있다.
(제가 당신의 책에서 기대한 바가 남녀의 연애 단계는 아니라고요.)
특히, PART 3 '결혼에 대해여', PART 4 '철학과 신앙에 대하여'는 이 책을 완독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시련이며 도전이었다. 책 공백 여기저기에 '아... 때려치우고 싶다.'를 쓰며 버텼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내 인내력의 한계를 확인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이 컸나 보다.
이 책은 위험하기도 하다.
이 책이 말하는 개인주의를 넘어 공동체를 지향하는 많은 주장들이 자칫 오역하게 되면 집단주의, 더 나가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내용을 들릴 수도 있다. 공동체의 목표에 헌신하는 개인과 정체성 자체를 바꾸려는 집단의 사례는 주말마다 단체로 북한산을 올라야 조직의 단합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팀장님이 인용하기 좋은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지향하는 관계주의는 초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중간 방식이라고 결론 부분에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아무튼, 아쉬움이 많은 책이다.
주장하는 메시지에 비해 말이 너무 많은 게 탈인 것 같다. PART1과 그에 걸맞은 핵심적인 사례 그리고 결론이면 저자의 주장하는 바가 인상 깊게 받아들여졌을 텐데... 완독의 기쁨보다 더 크게...
잡담) 이 단락은 몇 번을 읽어봐도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만일 결혼을 최대치로 정의한 것이 일심동체가 되는 것이라면, 사랑을 개인주의적으로 정의한 것은 자율성을 유지하는 채로 지원하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서약적인 관점이 관계 차원의 필요를 각 개인 차원의 필요보다 우선시한다면, 결혼에 대한 개인주의적인 관점은 각 개인 차원의 필요를 관계 차원의 필요보다 우선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