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세상 모든 택배는 반갑다.
그중에서도 나를 특히 행복하게 하는 택배가 있다.
그것은 한 달에 한번 배달되는 ‘최인아 책방 북클럽'에서 선정한 도서가 담긴 택배 봉투다.
개인적으로도 책은 넘치도록 구매하고 있지만(읽는 행위와는 별도로…) 최인아 책방에서 보내주는 책은 나를 잘 아는 선배가 주는 선물 같다.
이번 달에는 무슨 책이 올까 하는 호기심은 택배 봉투를 열고, 책 커버를 보는 순간 읽을 기대감으로 바뀐다.
6월에 이런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바로 유현준 건축가의 <공간이 만든 공간>이다.
<공간이 만든 공간>은 빙하기 이후부터 인류의 시곗바늘을 건축가의 시선으로 쫓아가며,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특징이 건축 양식에 어떻게 반영되어 발전해 왔는지를 고찰하고, 창조적이고 새로운 생각이 어떻게 탄생하는 지를 정리한 유현준 버전의 <생각의 탄생>이랄까.
이 책의 전반부는 재러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영향을 받아 ‘지리 결정론’에 기초하여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와 건축 양식의 특징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동서양 문화와 건축양식 차이의 출발점은 강수량이다.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농업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 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서양은 밀농사 방식에 따라 개인주의 성향이 내재화되었고, 동양은 벼농사의 집단 농사 방식으로 관계성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렇게 내재화된 동서양의 가치는 건축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서양은 외부와 단절된 창문이 거의 없는 벽 중심의 공간으로 발전했고, 동양은 많은 강수량을 극복하기 위한 목재를 이용한 기둥 중심의 건축 양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서양은 건축물 자체에 주목하지만, 동양은 건축물과 관계를 이루는 주변 환경. 자연을 중시하게 되었다.
서양은 건축물 자체가 감상의 대상이 되지만, 동양의 건축물은 안에서 밖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한옥은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비 오는 날 대청마루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물을 상상해 보면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감성이 먼저 와 닿는다.
이렇게 각자 다른 길을 가던 동서양의 건축 양식은 후반부에서 대항해시대를 지나, 제국주의를 거치면서 문화 유전자를 서로 교환하게 되고, 근대 건축으로 진화하게 된다.
'나무 기둥을 철골 기둥으로, 창호지를 유리창으로' 바꾼 건축 공간이라 언급되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와 르 코르뷔지에의 '카펜터 센터’ 등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에 녹아든 동양 건축의 특징은 매우 흥미롭고 신기하다.
동서양 공간의 교배는 루이스 칸과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건축에 대해 문외한인 나로서 판단 자체가 불가능 하지만, 앞서 기술된 두 세계의 건축 양식이 융합되는 과정은 생각이 창조되고 진화되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책 속 사진으로 만나는 루이스 칸의 ‘소크연구소’ 중정과 안도 다다오의 ‘물의 교회’는 이 감흥이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직접 느껴보고 싶다.
이후 동서양 지리적 이종 교배는 막을 내리고, 학문의 융합으로 이어져 철학, 생물학, IT기술 등이 건축과 결합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로써, 이 책은 빙하기가 끝나면서 바뀐 지리적 환경이 만든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부터 만 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가상공간이 만들어지는 시대까지의 긴 여행을 마친다.
이 책은 유현준 건축가의 주관적인 문화사적 관점을 정리한 책이다. 실험에 의한 객관적인 데이터나 논문 혹은 연구 자료 인용 등은 없다.
그러므로, 저자 나름의 합리적인 추론에 동의하지 못하거나 혹은 거부감을 느낄 수가 있다.
당연히 예상되는 반응이다.
나도 몇몇 부분에서는 과도한 비약과 뭉뚱그린 일반화로 인해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었다.
공감하고 말고는 전적으로 읽은 이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제약과 융합이 새로운 생각의 원천이라는 것과 열린 마음이 창조를 이끌고, 열린 마음은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인정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창조적 영감은 갈등을 화합으로 이끌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