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재들은 광고업계를 외면하는 중입니다.
광고 그거 열정 페이 아냐?
취업 시즌, 나는 삼성의 광고계열사인 제일기획에도 지원했다. 서류를 뚫고, 기출도 시중에 문제집도 없는 광고 싸트를 어찌어찌 준비했다. 시험장을 가득 채운 지원자들과 인적성 시험을 치렀고 광고 신의 도움으로 면접 인원에 선발되었다. 최종 면접장에 모인 것은 단 일곱 명.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아침 여섯 시부터 오후 네시까지 면접을 봤다. 두 명 정도 뽑힐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면접장에 들어간 인원 중 한 명도 뽑히지 못했다. 그 해 신입 카피 티오는 역대급 가뭄이었다.
우리가 뭘 알려줄 건 없을 거야
알아서 잘해봐
*시디님은 이제 막 카피라이터가 된 나에게 알려줄 것이 없노라 선언하셨다. 카피를 잘 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잘 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는 법이 없었다. 물론 물어보면 조금씩 팁을 주시기도 했고 스스로 다른 팀원 분들께 매달려서 방향을 찾아보기도 했다.
*시디 (CD; Creative Director. 광고회사 제작팀의 팀장)
여전히 광고회사 제작 사이드에는,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재능에 달려 있으며 숙달하는 방법은 저마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깨우쳐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나는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주니어 연차가 성장해서 1인분을 하고 나아가 시디급으로 완성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성장 속도에 따른 편차가 크기에 인력 리소스를 관리하는데도 비효율적이다. 카피 깎는 노인으로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스러지고 있을까.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묵묵히 카피를 깎아야 할까
이제 광고산업은 기울고 있다. 좋은 처우를 바라기 어려워졌고 기회는 적어졌으며 워라밸이 중요한 시대에 아직도 높은 업무강도로 악명이 높다. 카피가 되는 방법은 점점 더 막연해져 가는데다 카피로서 성장하는 길은 더욱 묘연하다.
광고 황금기에는 이렇게 해도 카피라이터를 많이들 하고 싶어 했다. 인문계열 직업에선 잘 버는 축에 속했고, 시디가 되어 몇억 잭팟을 터트리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광고는 너무너무 재밌는 일이니까. 하지만 일잘러들은 기회를 찾아 떠나고 좋은 인재들은 광고에 목숨을 걸어볼 이유가 없어졌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미래에 대한 걱정을 들어도 쉬이 넘기지 못하고 곱씹게 되는 이유다.
광고대행사는 꾸준히 이래 왔고 업계를 바꾸는 건 회사나 윗분들, 혹은 스탭부서나 기획팀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 나가기로 했다. 하필이면 이 일, 광고 만드는 일, 아이디어를 내고 카피 쓰는 일을 사랑하니까. 오래오래 좋은 사람들과 재밌게 하고 싶으니까. 내가 바뀌고 팀이 바뀌고 회사가 바뀌면, 어쩌면 이 업계도 예전처럼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광고를 원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정형화 하자
이것이 광고산업을 효율적으로 바꾸고 좋은 인재를 모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디어를 내는 법, 광고인이 하는 일, 카피라이터가 되는 법까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광고업계에 대해 자세히 정형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위해서, 업계의 동료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친구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