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마트에서 울다』책과 인터뷰를 보고
열흘 전 주말 조선일보에 미셸 자우너 인터뷰가 나왔다. 작가는 올해 남편과 함께 한국에 있다. 어학원에서 한글을 배우며 ‘한국어 배우기’에 대한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4/08/10/QTTRB6QCUVDY7ETLSWHXVTPE3U/
나는 예전에 『H마트에서 울다』를 보다가 엄마가 아프기 전, 시간이 왔다 갔다 하는 게 어수선하고, 100쪽 무렵 음악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어 책을 덮었다.
인터뷰를 읽고, 머리맡에 오래 두었던 책을 다시 집어 들고 순식간에 마무리했다. 잘 읽히는 훌륭한 책이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면 울까?
12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으로 가족의 죽음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가슴이 뻐개질 듯 아팠는데, 그 후 몇 년 동안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통증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장수하시니 돌아가셔도 회한은 없을 것 같다. 지금 심정은 ‘5남매 키우느라 수고 사셨습니다. 이제 쉬세요.’ 하고 보내드릴 것 같다. 그런데도 엄마가 돌아가시면 울까?
미셸이 엄마가 돌아가신 후 상실감을 치유해 나간 방식은 한국 음식 만들기였다. 유튜브에서 망치 Maanchi의 레시피를 따라 된장찌개, 잣죽과 김치들을 만든다.
망치의 레시피를 유튜브에서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의 ‘통배추김치 만드는 법’은 지금 조회수 2,921만 회이다.
망치여사는 온갖 비법을 한 단계 한 단계 전수해 주었다. 마치 어느 때고 의지할 수 있는 디지털 후견인처럼 내가 몰랐던 지식, 의당 내 것이어야 할 지식을 알려주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지막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고는, 보드라운 죽이 엄마의 갈라진 혀를 살포시 감싸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리고 따뜻한 액체가 천천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뒷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어릴 적 먹어본 음식이 평생의 식성을 결정한다. 나는 지금도 우유의 맛 차이를 모른다. 열 살 무렵 엄마가 장롱에 숨겨두고 가끔 맛 보여 주었던 가루 분유밖에 먹어보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우유는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다.
미셸과 달리 자식 다섯을 키운 집에서는 음식을 맛으로 먹을 수 없었다. 60년대와 70년대 엄마는 그저 일상의 모든 밥을 대기에 급급했을 것이다. 자식 한 명 한 명과 음식으로 교감을 쌓기는 불가능한 시절이었다.
내가 음식으로 엄마를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대학교 다닐 때 엄마가 사준 메밀 소바이다.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딸을 만나러 온 엄마랑 롯데 백화점 식당가에서 밥을 먹었다. 나는 처음으로 냉 메밀 소바를 먹어보고,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하고 감탄했다.
내친김에 그녀의 밴드 Japanese Breakfast도 유튜브에서 검색했다. 구독자 13만 2천 명, 그들의 곡 Be Sweet는 350만 조회수이다. 재능은 서로 통하는 점이 있는 모양이다. 그녀는 글쓰기에서도 성공했고, 음악가로서도 큰 성과를 얻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엄마가 신의 목이라도 졸라서 내게 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게 틀림없다.
2014년 엄마가 돌아가시고, 미셸은 2016년 엄마에게 헌정한 첫 앨범이 히트해 세계 순회공연을 했고, 2021년에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정말 죽은 엄마의 축복인 듯하다.
-언제 어머니가 가장 그리워요?
“내가 성공할 때요. 모두가 칭찬해도, 내가 달려가 마음껏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은 단 한 사람은 엄마죠. 아마 그래서 내가 잘 나갈 때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겁이 나나 봐요.” -조선일보 2024.8.11.
미셸이 한국에서 잘 쉬고, 맛있는 한국 음식 더 많이 먹고 힘내서 한글도 많이 배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을 근사하게 써내기를 기대한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을 울리는 글을 써낸 그녀를 엄마의 마음으로 머리 쓰다듬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