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8월 12일 학생들이 아직 낮이 펄펄 끓는데도 개학했고, 나는 시간이 많아졌다. 더위를 잊기 위해 몰두할 일이 필요했고, 재미있는 소설책이나 읽어 볼까 했다. 쌓이는 책을 보면서, 기왕이면 여름 동안 책 삼십 센티미터를 읽어야겠다 싶었다. 지금 십구 센티미터 무더기를 쌓았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는 마치 헤밍웨이처럼 생겼다.
오래간만에 읽은 노벨상 수상 작가의 책은 난해하면서도 단순했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테마 자체의 속성이 그렇듯이. 책을 덮고, 멍하니 뒤표지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정여울의 글을 읽었다. 정여울의 평은 내 할 말을 대신했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를 꿈꾸어왔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위대한 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눈부신 이야기를. 누구나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두 가지 주제, 바로 삶과 죽음을 ‘특별한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작가는 이 어려운 작업을 아주 능청맞고도 사랑스럽게 해낸다. 삶과 죽음 사이에 들어찬 모든 문장에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음으로써,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잠시 휴식하기 위한 쉼표만을 사용하면서, 죽음과 삶의 과정이 결국 하나의 끝나지 않는 문장 속으로 들어오도록, 이 이야기 속에서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은 삶을 밀어내지 않는다. [...]
정여울
‘인간이 무에서 무 같은, 그런 것을 생각할 수는 있다 해도, 그것만은 아닌 것이, 그 이상의 많은 것이 있다, 하지만 그 다른 것들이란 무언인가?’
나는 그것이 심오하고 거룩한 것이 아니라 일상이라 생각한다. 매일 요한네스가 아침이면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듯, 하루를 살면서 내가 먹는 것, 하는 것, 보는 것, 자는 것조차 무를 견디는 방법이다.
이렇게 살다 어느 날 문득 ‘오늘도 여느 아침처럼,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아 보였다, 정말 그랬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어딘가 달라졌다’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내 죽음을 알아볼까?
나도 모르게 그날이 올 때까지는 별 수 없다. 그저 정해진 일을 하고 살뿐이다. 책이 많은 생각거리를 내게 던졌어도 거기에 마냥 머무를 수 없고, 글이 덜 되어 탁해도 끝없이 고치고 다듬을 시간이 없다. 나는 이제 일어나 당장 주말 수업에 가서, 하루 종일 요한네스가 고기를 잡듯 일을 해야 하니까.
* 나는 '잔교'를 예전부터 사랑했다. 마침 책에 잔교 이야기가 나와서 이미지를 찾아 보았다. pixabay에서 건진 이 이미지는 마치 삶의 마지막 다리를 건너는 사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