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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축하해. 당신도 이제”

by 꼬낀느


브런치스토리의 할머니들이 손자 이야기를 할 때면 신기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요새는 ‘할머니는 아무나 하나’ 싶을 정도로 아기가 귀해, 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돌이켜 보면 중년에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나는 젊어서부터 아이를 보면 말도 걸고, 손짓 몸짓으로 눈길을 끌어 웃게 만들었다. 같이 길을 걸어가던 동생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챙피하게 왜 그래!”


그렇게 아이들을 좋아했는데, 내 자식 키울 때는 남의 애들 이쁜 줄 모르다가, 애들 다 크고 나니 다시 온 세상 아이들이 보였다. 하지만, 우리 네 자녀 중 두 명은 결혼도 안 하고, 딸 하나만 아이를 가졌다.


처음 전화로 임신을 알려주었을 때,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아기는 7월에 태어날 예정이라, 태명을 ‘열음’의 의미를 띤 ‘여름’이라 지었다고 했다. 그 후 ‘걱정 할미’가 되어 모든 게 염려되었다. 딸이 독감에 걸렸을 때 아직 초기라 열나면 아기에게 해롭다고 했다. 고열이 나서 사위가 이틀 동안 꼬박 곁을 지키며 찬물 수건으로 열을 내려주었고, 나는 뭐라도 먹이려고 죽과 생강차를 끓여 딸에게 달려가기도 했다.


그때를 제외하고 딸은 아프지 않았다. 나는 그저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끼며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조심스럽게 겨울을 보내고, 이제 임신 중기를 맞이했다.

만 4개월이 되기를 목 빼고 기다린 까닭은 16주가 지나면 성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달 일본 여행을 갔을 때도, 교토에서 아기 모자를 고르면서 성별에 상관없는 무늬와 색을 골똘히 생각하며 고르기도 했다.


딸과 사위는 1월에 성별을 알았는데,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젠더 리빌(gender reveal) 파티 때 알게 되어요.”

입이 근질거렸을 텐데, 그래도 웃으며 말해주지 않았다.

꾹 참고 며칠 기다리다 마침내 딸과 사위가 풍선을 들고 왔고, 내가 조심조심 바늘을 찔렀다.

팍!

겉의 검은 풍선이 터지면서, 안의 파란 풍선이 드러났다.

“아들이다!”

나도 모르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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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을 낳고 울었다. 서운해서가 아니었다. 나처럼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여자의 운명이 출산의 자리에서 가장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더 귀하지도 않았고, 딸이 아들 낳기를 소망하지도 않았다.

“딸을 낳으면 느네가 좋고, 아들을 낳으면 시부모님들이 좋아하실 거니까.”


딸은 어제부터 아기가 태동을 시작해서, 일하다가도 깜짝 놀란다고 했다.

“오전 내내 활발하게 움직이더니 낮 되니 조용하네.”

“저런. 아기가 밤낮 바뀌면 엄마 고생하는데.”

그러면서 우리 모녀는 웃었다.


요즘은 우리 때랑 달라진 풍습이 더러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성별 알려주기였고, 또 생선회를 먹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태교 여행이다.

“태교 여행이라니.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아기가 뭐 여행 가재? 그냥 제 자리에 안정되게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가능하면 여행은 삼가면 좋겠다.”

“의사 선생님은 유럽 정도만 안 가면 한두 시간 비행기 타는 건 괜찮대요.”

“그럼 중기에 서울 정도만 가는 걸로. 일본도 멀다.”


귀하디 귀한 아기. 우리 여름이.

부디 태중에 있을 때 건강하게 개월 수 채우고, 엄마 조금만 힘들게 하고 쑥 나와서 씩씩하게 자라기 바란다.


나도 이제 곧 할머니가 된다!

감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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