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달 살기 2
아시아나 항공의 스마티움 자리는 성공적이었다. 이코노미의 맨 앞자리. 간혹 사람들이 통로로 사용하지만,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도 될 만큼 너른 공간. 마침 내 옆자리가 비어, 이코노미 이용 중 가장 편한 여행을 하였다. 14시간이라도 자리가 편하니 힘들지 않았다. 커피도 안 마시고, 와인도 안 마시고 식사는 반 정도. 자려고 노력은 해보았는데, 전날 워낙 잘 쉬고 잘 자서인지 졸리지 않았다. 책 보다, 다운 받은 드라마보다 하며 보냈다.
와이파이는 경험상 한 번 사보았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카톡 보낸다는 짜릿함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온라인 수업도 소리밖에 안 나왔고, 검색도 인터넷 초창기처럼 느렸다. 브런치도 한참 기다리면 조회수 확인 정도 할 수 있었다. 다음 여행부터는 안 할 것이다.
답답해지면 가끔 뒤로 가 비행기 제일 뒤쪽 공간에서 몸을 움직였다. 예전에는 거기 exit에 달린 창 덮개를 열고 밖을 내다보았는데, 아무 데도 바깥을 볼 수 있는 창이 없어 아쉬웠다. 그 창가에 서서 밖의 밝음, 혹은 어두움 너머를 바라보며 내 삶을 꿈꾸었는데.
스마티움 좌석 덕에 가장 빨리 입국수속을 했다.
“얼마 동안 머무나? 어디에 머물 건가? 여동생 집 주소는? 돈은 얼마 갖고 있나?”
이것만 묻곤 끝이었다.
입국 수속 빠르면 뭐 해. 짐 나오는데 무려 이십 분 이상 걸려서 투덜거렸다.
“이십 분이면 보통이야. 사십 분 넘을 때도 있었어.”
마중 나온 동생 영민이랑 택시 타고 집으로 온다.
퀸즈를 거쳐 오는 길, 내가 26년 전 처음 미국에 왔던 날 보았던 풍경이었다.
“시간 충분하니 유료도로 안 가고, 시내로 들어갈게요.”
박찬호가 그날 경기한다는 Shea Stadium을 지나 한국인 동네가 있다는 플러싱 곁을 지나니 한국어로 된 간판이 더러 눈에 띈다. 아이가 깔깔대며 한글을 읽는다.
우리를 마중 나온 이의 집은 맨해튼의 메디슨가에 있는 마운트 시나이병원 소유 아파트이다.
“이 이파트 백 년밖에 안되었어요.”
마치 1920,30년대 영화에 나옴직한 나무 문이 달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니, 15평 남짓한 그들의 거처. 온통 CD와 그림으로 뒤덮여 있다. 그는 점심을 준비하고, 나는 그의 CD를 뒤적인다.
97년 8월 20일 오후 2시. 맨해튼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쓸까 말까 망설일 정도로 가는 비가. 천천히 메디슨가 다음 거리인 5번가를 향해 걷는다. 5번가의 한쪽 뮤지엄 거리 블록에 Cooper-Hewitt Museum, Jewish Museum, 그리고 Guggenheim Museum들이 있다. 구겐하임을 목표로 걷는다. 제일 신기했던 것은 뉴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낡은 도시였다는 것이다. 비교적 여유 있는 동네라 마치 유럽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사람도 별로 없고, 집들은 조용한데 입구에 근사한 제복을 입은 수위 아저씨만 보이고, 비가 와서 서늘하다.
왈칵 감동이 밀려온다.
아아! 나는 자유로웠다.
97년, 나는 뉴욕에서 첫날부터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자유가 그때는 그만큼 소중했다.
오래 잊었던 그 길을 다시 찾는다.
나에게 돌아가는 길.
그 자유를 위해 하루 만에 시차를 극복하기로 했다. 동생 집에 도착해서 제부 스티브와 인사하고, 재택으로 일하는 두 사람은 각각 거실과 침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짐 정리를 한다. 어떻게 배치하면 가장 효율적일까 머리를 굴린다. 물건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모든 것이 제 자리에 딱 들어가 있어야 일이 잘 된다. 이제 이 자리에서 쉬고, 글도 쓰고, 학생들 줌 수업도 할 거니까.
밤 9시 넘어 30시간 만에 잠을 청한다. 잠이 깊진 않았지만, 깰 때마다 좀 더 나를 다독인다.
“좀 더 자자, 응? 그래야 내일부터 마음대로 활동하지.”
아침 6시 뉴욕에서의 첫 날 눈을 떴다. 하루 만에 시차 적응은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