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접시 Apr 21. 2021

오이소박이의 필요

 

엄마는 별말 없이 내가 일하는 곳에 오셔서 내게 반찬 한가득을 주고 가셨다.
봄이다.
마트에서도 이제는 흔하게 오이를 볼 수 있는 계절이다.  
비닐봉지 한가득 오이소박이가 있다.
봉지를 열어 옆 동에 사는 동생 반찬을 덜어 주고
한입 먹어보며 그제야 엄마에게 고맙다는 전화를 했다. 엄마는 사실 아빠랑 다투고 오이소박이랑 밑반찬을 주섬주섬 싸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던 학원까지 주고 가셨던 거다.
딸들이 멀리 이사를 가고 조금은 심심하고 아프고 쓸쓸했던 맘을 엄마에게 풀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준 반찬 덕에 맛나게 저녁을 먹을 수 있겠다 했더니 엄마는 좋아하셨다.
사실 나 철없이 동생에게 반찬을 덜어주며 김치를 갖고 버스를 타고 오는데
무거운 반찬을 걸어서 안 갖다 줬으면 좋겠다 했다.
 철많은 동생이 "엄마는 무겁고 힘든 것보다 아빠랑 다투고 답답한데
우리가 잘 먹을 거 생각하고 온 거야.
근데 그거 알아? 언니랑 나도 엄마 닮은 거 ^^"

잘 익은 오이소박이 국물까지 깨끗하게 먹고
나니 엄마가 주말에는 총각무 한 통을 또 해오셨다. 오른손에 일하다 화상을 입었는데
그 손으로 또 반찬을 해오신 걸 보면
엄마는 진짜 엄마 맞나 보다.
마흔 넘은 자식들이 맛나게 먹는 걸 보면 그렇게
좋단다.

작가의 이전글 약밥을 꾹꾹 눌러 담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