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섯의 봄 (1) - 복직
마흔여섯, 3월
의학계 명사들을 모시고 학술세미나를 진행했다.
세미나 후 오찬 자리에서, 건강 칼럼을 쓰시던 원로분께서 격려차 내게 말씀하셨다.
"과장님은 딱 봐도 건강체질이야. 저런 사람이 무병장수해."
난 그냥 웃었다.
2주 전 유방암을 진단받고, 질병 휴직 제도를 홀로 알아보고 있던 때였다.
뉴질랜드 2년 살기를 마치고 돌아온 마흔여섯의 2월.
직장 복귀 전주에 가벼운 맘으로 건강검진을 갔다.
"가슴에 모양이 안 좋은 혹이 있으니, 오늘 조직검사도 받고 가세요."
총 조직검사로 4군데 조직을 채취했는데, 마취했음에도 아팠다.
커다란 드레싱밴드를 붙이고 집에 오는데, 얼떨떨하기만 하다.
'에이, 가족력도 없는데. 괜찮겠지. 맘모톰 같은 걸 하게 될까?' 정도가 당시 했던 생각이다.
복직을 하고, 업무분장을 하고, 인사팀에 인사를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정신없는 일상이 2년 만에 다시 시작되었다.
뉴질랜드에서 배로 보낸 옷들과 각종 생활짐은 아직 바다 위에 있었고,
2년간 세입자가 살다 간 우리 집은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학교에 가는 아들을 위해 돌봄, 방과 후 프로그램 같은 제도들을 찾고 세팅해야 했다.
해치워야 할 수많은 리스트들과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 속 활력으로 복직 첫 주를 보내던 중,
수요일 퇴근길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오시는 게 좋겠다고.
그때부터,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덜컥 무서워졌다.
"악성입니다. 아직 전이 소견은 안 보이지만, 빨리 대학병원 예약하셔서 치료 시작하세요."
내 또래의 여자 원장님은 몹시 당황스러워하는 내게 덧붙이셨다.
"유방암은 표준치료받으시면 됩니다. 안 죽어요. 6개월~1년 정도 걸릴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하시고요."
큰 병원들은 빠른 예약이 쉽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특히 엄마 아빠에게 암밍아웃 하는 것이 어려웠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너무 미안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육아휴직 마치고 돌아와, 다시 업무를 막 시작한 사무실에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그 와중에 진행 중이던 집 인테리어는 벽지부터, 화장실 수전까지.. 계속계속 선택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이제 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정신없이 업무처리를 하고 퇴근해 아들을 저녁 먹여 재우고 나면,
몸은 너무 피곤한데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유방암 책들을 사모으고, 유튜브를 들여다보았다.
뭘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찾아 헤맸다.
"대체 왜 내가?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데, 정말 내가?"
머릿속에는 멈추지 않는 WHY WHY WHY 가 계속 울려 퍼지고,
고장 난 패닉 버튼은 시도 때도 없이 On/Off를 반복했다.
낯선 행성에 가이드북도 없이 착륙한 기분이었다.
(이미지: AI로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