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의 봄 - 다정한 두 남자
복직 3주 차.
주 5일 풀타임 근무. 지하철 출퇴근. 봄으로 가는 일교차.
이런 조합이 몸살을 불러왔나 보다.
금요일 사무실에서 종일 한기를 느끼다
포근한 집에 도착하니 행복감과 노곤함이 두서없이 몰려온다.
저녁 먹고 살포시 잠이 들었는데,
열 살 아들이 내침대로 와 볼을 만지고 입 맞추고 가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어린 아들에게 하던 다정함의 표현들이
이렇게 종종 되돌아온다. 한결 더 따뜻하게.
남편은 몸이 크고 체온이 따뜻하다.
아들과는 다르게, 다정한 말을 자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다정한 행동에 종종 놀란다.
복직 전날 내 남방을 반듯하게 다림질해 걸어놓거나,
대충 묶은 내 신발끈을 다시 이쁘게 묶어주는 그런,
은근하고 세심한 다정함이 있다.
갑작스러운 암 진단과 10개월의 표준치료 기간 동안,
다정한 두 남자는 나의 닻이 되어 주었다.
내가 풍랑 위의 배처럼 흔들릴 때, 다정한 '닻'은 나를 붙잡아주었다.
패닉, 우울, 불안 이런 감정들이 쌓이다 넘쳐흐르면,
다정한 체온들은 나를 진정시켰다.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두 번째 항암 후부터 내 마음은 다시 바람을 타고 나아갔다.
여러 부작용에 종종 외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다정한 두 남자는 돛이 되어 작은 바람에도 내가 나아갈 수 있게 해 줬다.
하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다. 재미를 찾기 시작하자,
다시 라디오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아들과 엉덩이를 흔들 수 있었다.
아빠는 무비스타, 엄마는 스님 같네. 그럼, 난 뭘 할까?
선글라스를 낀 남편과, 항암 후 까까머리가 된 나를 보며,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열심히 웃고, 느긋하게 행복했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나는 조직을, 상사를 바꿀 수 없다.
내 삶은 내가 괴롭던, 즐겁던, 나를 관통해서 흘러갈 것이다.
내가 굳이 무얼 해내지 않아도 된다.
매일 매 순간에 좋은 에너지와 친절함, 따뜻함을 가지고 재밌게 살면 된다.
그렇게 언제 '끝'이 와도 후회 없이 살려고 노력한다.
https://youtu.be/-BjZmE2gtdo?si=7VfS4M0ovVHDke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