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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May 09. 2019

마종기 - 물빛 1



내가 죽어서 물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끔 쓸쓸해집니다 


산골짝 도랑물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누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을까요 

냇물에 섞인 나는 물이 되었다고 해도 

처음에는 깨끗하지 않겠지요 


흐르면서 또 흐르면서

생전에 지은 죄를 조금씩 씻어내고

생전에 맺혀있던 여한도 씻어내고 

외로웠던 저녁, 슬펐던 앙금들을 

한 개씩 씻어내다보면

결국에는 욕심 다 벗은 깨끗한 물이 될까요 


정말로 깨끗한 물이 될 수 있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을 부르겠습니다 

당신은 그 물 속에 

당신을 비춰 보여 주세요 

내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주세요 


나는 허황스러운 몸짓을 털어버리고 웃으면서 

당신과 오래 같이 살고 싶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당신은 그제서야 처음으로 

내 온몸과 마음을 함께 가지게 될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송두리째 가진다는 뜻을 알 것 같습니까 

부디 당신은 그 물을 떠서 손도 씻고 목도 축이세요 

당신의 피곤했던 한 세월의 목마름도 

조금은 가셔지겠지요 


그러면 나는 당신의 몸 안에서 당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죽어서 물이 된 것이 

전혀 쓸쓸한 일이 아닌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 하늘빛> 마종기 지음, 2014.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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