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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Feb 20. 2020

그래, 얼굴을 고치고 싶으시다고?

성형수술 후기



살다 살다 이런 후기를 쓸 날이 올지 몰랐다. 불과 얼마 전 과도한 보정 어플의 폐해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내가 성형수술을? 이런 위선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성형수술에 대해 딱히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 얼굴 속 맘에 안 드는 한 가지 정도는 있을 거니까. 나의 경우엔 퀭한 인상을 만드는 주범, 눈밑 지방이 바로 그랬다.




성형이라는 마의 벽을 넘기까지 정말 오래도 걸렸다. 적극적으로 고민을 했다기보다는 욕심을 억누르려 애썼던 것에 가까웠다. 지인들에게 눈밑 지방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면 ', 네 눈밑에 지방이 있는 줄 몰랐다'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었기에, 내 마음만 다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증명사진을 찍고 나서 처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 날이 유독 피곤했던 거야, 표정이 굳어서 그랬을 거야, 암만 나를 위로해봐도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다. 포토샵 고수인 사장님의 마법 같은 손놀림으로 이력서 사진은 겨우 건졌지만 밀려드는 현타를 막을 순 없었다.


미리 가입해둔 카페에서 밤낮으로 후기를 뒤져보고 후보 3곳을 추렸다. 다른 잡다한 수술 하지 않고 '눈밑지방'을 메인으로 하는 병원들로. 첫 번째 갔던 병원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지도가 높고 규모가 큰 곳이었는데, 코로나 쇼크가 무색하게 환자들이 바글바글했다. 덕분에 나는 예약을 했음에도 1시간 20분이나 대기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의사 선생님은 대뜸 탄식을 하더니 "아~ 이건.. 스읍.." 퍽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고, 나는 내 얼굴이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건가 싶어 한움츠러들었다. 요컨대 얼굴의 전체적인 균형을 위해 추가적으로 지방이식이 함께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는 내 얼굴을 요리조리 사진 찍어 보여주면서 그간 인지하지도 못했던 '얼굴의 평평함'을 강조다. 못생김을 확진받은 것 같아 기분이 영 찝찝했다. 그와의 상담 시간은 도합 2분. 아무리 유명한 병원이라도 여기서 하고 싶진 않았다.


두 번째 병원은 첫 번째 병원과 다르게 대표원장 혼자 진료를 보는 1인 병원이었다. 병원 시설이 약간 구식이긴 했지만 인테리어나 홍보비로 과도한 지출을 때려 넣는 업체보단 나아 보였다. 상담을 해 보니 여기서도 역시 지방이식을 추가적으로 권유했는데, 단독으로 했을 때 우려되는 이유와 이식까지 했을 때 예상되는 모습 등을 설명해 주는 원장님의 차분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상담 실장님은 내가 결정을 고민하자 '지금 여기서 예약금 쏘고 가시면 20만 원을 할인해준다'는 통 큰 제안을 했고, 나는 박력 있는 그녀에게 홀려 다음 예정된 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냉큼 질러버렸다.




수술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막상 결정을 하고 거울을 보니까 '뭐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은데?' 싶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예약금은 자신의 얼굴을 사랑하지 않은 죄, 벌금으로 날린 셈 칠까. 실은 수술이 잘 되고 말고의 문제보다 처음 해보는 수면 마취가 더 걱정이었다. 못 깨어나면 어쩌지. 성형외과에서 유명을 달리한 젊은이들이 왕왕 있다던데. 주변의 짓궂은 친구들은 끔찍한 신문 기사를 보내며 불안감을 더욱 조장했다. (그래, 그래야 진짜 친구지. 두고 보자 이 녀석들) 벌벌 떨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 동의서를 쓰고 있었다.

게임을 시작하지

그렇게 누운 수술대. 두 개의 커다랗고 기괴한 조명이 나를 반겼다. 수술 중 손을 움직이면 위험하니 결박한다고 했다. 네? 결박이요? 안 그래도 진정되지 않는 가슴이 요동쳤다. 아,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할까.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갈까. 나의 진지한 갈등을 뒤로하고 수술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갔다. 무엇보다 나를 불안하게 했던 건, 수술 도구의 소름돋는 금속 소리보다 더 차가운 간호사님들의 태도였다. 얼굴에 소독을 할 때도, 라인을 잡을 때도, 고정된 내 몸을 움직일 때도 그들은 나를 일종의 물건처럼 대했다. 오른팔에 꽂힌 주삿바늘이 아프다고 호소했더니 아직 아무것도 안 했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으으 부들부들. 하지만 나는 찍소리 못했다. 곧 수면마취가 들어간 뒤면 나는 슈퍼 을이니까. 그들도 매일 환자를 보느라 힘들었겠지. 아니면 원장이 월급을 조금 주나 보다. 막 대해도 되니까 수술만 잘 끝내다오. 비굴하게 마음속으로 빌다 보니 이내 마취약이 들어와 정신이 몽롱해졌다. 무슨 프랙탈 세계 같은 곳을 떠돌며 기묘한 모험을 했던 것 같은데, 그 속에서도 '와 이거 끝내주네 글로 써야지' 했다가 깨어나자마자 다 까먹었다.

프로포폴ㄹ의 세계 호롤ㄹ로로

병원을 나오면서는 수술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마스크를 깊게 올려 썼다. 근데 잠깐, 나 왜 쪽팔려하는 거지. 잘난 외모가 최고의 미덕인 사회와 성형을 부끄러워하는 세태 중 도대체 뭐가 더 문제인 거지. 한편, 에리히 프롬은 이렇게 썼다.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충실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사람만이 오늘이나 내일이나 자신이 똑같은 사람이라 확신하며, 오늘이나 내일이나 똑같은 방향으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신앙'은 우리가 뭔가를 약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갖기 위한 조건이다.
<자기를 위한 인간>, 에리히 프롬

자신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니. 아무도 침범할 수 없고 아무도 깨트릴 수 없는 나만의 종교를 가져야 하는 것이라니. 그렇다면 조금은 알겠다. 만연한 성형의 풍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신앙을 등한시한 이들이 외모에만 천착하는 게 문제렷다. 비단 예뻐지려는 욕망뿐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도, 성공을 위한 채찍질도, 신앙을 영속하기 위한 게 아니라면 모두 헛돌고 말 것이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성형을 반복하다가 결국 누구의 얼굴도 아니게 되어버린 연예인들을, 텅 빈 껍데기뿐인 성공한 기업가와 재벌들을 우리는 이미 얼마나 많이 보았나.


그리고 나는 아주 잘 알려진 얼빠지만, 예쁘다고 다 환영인 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예쁜 걸 알고 있는 건 좋다.(모르고 있는 게 더 가증스럽다) 하지만 나 예뻐, 맞지? 하고 끊임없이 동의를 구하는 듯한 사람은 좀 꺼려진다. 얄팍한 자아는 예쁜 얼굴도 묻히게 만드는 것이다. 반면 진짜 예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에게선 뭐랄까, 기품 같은 게 배어있다. 외모뿐 아니라 목소리나 행동, 웃는 표정 등에서도 어떤 일관되고 차분한 매력이 풍긴다. 관심을 한눈에 받는다고 으쓱하지 않고, 주목받지 않는다고 남을 시새워하지 않는다. 그건 아마 그들만의 예배당이 아주 견고하고 튼튼하기 때문이리라. 아아, 나는 그간 나의 유일신에게 얼마나 소홀했던가. 제사는커녕 기도라도 제대로 드린 적 있었나. 회개하는 마음으로 퉁퉁 부은 눈에 얼음찜질을 했다. 속죄의 눈곱이 많이도 떨어져 나왔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믿고 사랑하기까지의 여정―이른바 '순례자의 길'―은 아주 길고, 지루하고, 때론 의심스러울 것이다. 남들은 매끈하게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데 내 앞에 펼쳐진 길은 왜 이리 거칠고 투박하기만 한가 억울한 마음도 들 것이다. 하지만 달리 방도는 없다. 그냥 걷는 수밖에. 고뇌하고 좌절하면서도 계속 걸어야 한다. 만약 걷다가 눈밑지방이라든지 안검하수라든지 하는 돌부리를 발견한다면 한 두 개쯤은 저 멀리 치워버려도 좋다. 다만 백날천날 장애물만 옮기다가는 정작 완주를 놓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구도자의 마음으로 꿋꿋이 걷다 보면 믿음이 조용히 피어오를지도, 그리고 그 신앙이 온 생애를 걸쳐 자아를 지탱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변명처럼 아주 길게 늘어놓았지만 결론은, 하려거든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병원도 잘 알아보고 하시라는 말. 이상 다소 낯 뜨거운 성형 고백 끝.


(2020.02.20)



함께 읽을 책 : <자기를 위한 인간> 에리히 프롬 지음, 강주헌 옮김. 2018. 나무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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