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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Feb 27. 2020

널리 알려지기보단 깊이 신뢰받기를



요즘 글을 쓰면서는 한계에 봉착한 느낌이 많이 든다. 여전히 머릿속 느끼는 바를 반도 담아내지 못한다. 구성은 매번 제자리를 맴돈다. 실력에 진전이 없으니 쓰면서도 만족도가 자꾸 떨어진다. 조회수는 그것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늘 바닥을 긴다. (통계 탭을 아예 지워버리고 싶다) 브런치 작가라면 다들 한 번씩 가봤다는 메인은 구경해본 적도 없고, 용기 내 가끔씩 도전해본 공모전들은 줄줄이 탈락이다. 뼈아프다.


어떤 분야에서 오래도록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할 때의 안 좋은 점은, 무엇이 정답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오답 노트를 하게 된다는 데에 있다. 이게 문제였을까, 저게 별로였을까, 내가 선택받지 못한 이유를 발굴하다 못해 발명하는 지경에 이른다. 시행착오를 거듭해봐도 마땅한 변화가 없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반성의 늪에 빠져 끝 모르게 자기를 검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제목은 너무 평범한가. 저런 표현은 너무 지루한가. 한 방향으로 날카롭게 벼려지는 게 아니라 두서없이 뭉텅뭉텅 쥐어뜯기는 까닭에 글이 산으로 간다. 거기까지 가면, 나는 왜 쓰는가, 하고 근원적인 물음과 다시 얼굴을 맞대게 된다. 아,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사는가.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여행 에세이 <교토에 다녀왔습니다>에서 임경선 작가는 교토의 특색 있는 상점들을 여럿 소개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무슨 가게들이 유명세를 마다할뿐더러 눈에 띄기조차 원치 않는다. 아주 작고 희미한 간판을 단 편집샵, 비좁은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서점, 엄격한 회원제로 운영되는 전통의 오차야(요정) 등등. 몇 대에 걸쳐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포부터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로 론칭한 가게에 이르기까지, 광고나 홍보는 일체 사절이며 심지어는 손님을 가려 받기도 한다.

"저희는 일부러 눈에 잘 보이는 간판을 달지 않았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찾기 어렵도록요. 숨은 집처럼,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가게로 만들고 싶었어요. 저희는 사전에 알고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편안하게 둘러보시는 것을 최우선으로 신경 쓰거든요. 지나다 불쑥 들른 분들이 너무 많아지다 보면 마음먹고 여기로 걸음 하신 손님들이 가게를 둘러보실 때 긴장하게 되니까요."
그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와서 화제의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사가는 그런 서점을 차릴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지나다 우연히 들르는 손님보다 이 서점의 존재를 사전에 알고 일부러 찾아와 주는 손님을 편애하기로 했다. 그런 손님들이 이곳에서 호리베 씨의 엄선된 책 큐레이션을 통해 자신에게 딱 맞는 책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일부러 가게 입구를 찾기 어렵게 만들어 놓고, 당당하게 손님들을 편애한다고 말하는 이 별난 주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언뜻 자본주의를 역행하는 듯 보이는 그들의 운영 철학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널리 알려지기보다는 깊이 신뢰받기를'.

꼭 가보고 싶은 교토 (사진 출처 : https://likejp.com/)

그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바는, 손님이라고 다 같은 손님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저 그런 평범한 고객 백 명보다는 애정을 갖고 발품 팔아 찾아오는 고객 한 명이 낫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자신의 색깔만 확고하다면 억지로 모객에 힘쓰지 않아도 찾아오려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찾아오게 되어있다고 믿는다. 대신 그렇게 어렵사리 방문한 손님에게는 환대와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단순히 주인과 고객의 느슨한 관계를 넘어 사람 간에 탄탄한 유대를 쌓는 것이다. 그래서 교토 사람들은 요즘도 장을 볼 때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를 방문하기보다는 품목별로 거래해온 단골 가게를 이용한다고 한다. 간장은 이 집, 생선은 저 집, 돌아다니면서 시장가방을 채워나가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지 않을까 싶다. 이렇듯 브랜드의 신뢰와 비전은 세치 혀가 아닌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일 테다.




다시 글쓰기로 돌아오자. 한창 고민을 할 땐 많은 조회수를 얻은 글들을 보며 저게 다 모범 답안인가 싶었다. 하지만 도무지 인정하기 싫었다. 메인에 오른 글들 중에는 좋은 글도 물론 많지만, 자극적인 제목으로 독자를 꾀어내는 글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까 보면 알맹이는 쥐똥만하면서 포장만 그럴듯하게 꾸며놓은 면세점 초콜릿 같은 글들도 많다. 그러나 그 초콜릿을 맛보며 내 안의 현실주의자는 말했다. "그렇게 일단 눈길이라도 끌어야 하는 거야 이 멍청아. 속는 셈 치고 클릭하도록 만들어야지." 그러자 내 안의 이상주의자가 말했다. "남들을 속이고 살지는 말자. 그건 엄밀히 따지면 거짓말을 하는 거야." 그렇게 둘이 한바탕 다투는 와중에 교토 에세이를 읽었다. 깨달음을 얻은 듯 돌연 머릿속이 환해졌다.


그래, 조회수나 인기가 뭐 대수랴. 이미 지금도 많은 독자님들이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있는걸. 실체도 알 수 없는 대중을 사로잡기 위해 헛되이 쇄신을 외치는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대신, 이미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쓰면 되는 일이다. 사실 글쓰기의 진짜 만족감은 그런 데서 온다. 내 글이 어떤 한 사람의 취향을 정확하게 겨냥해냈다는 기쁨. 내 이야기가 어떤 한 사람에게 진한 공감을 자아냈다는 희열. 그러니까 널리 알려지기보다는 깊이 신뢰받을 때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그럴 때 비로소 다음 글을 쓸 힘이 생기는 것이다. 한편, 교토 에세이의 상점 편은 이렇게 끝맺고 있다.

그 가게 주인들은 알고 있었다. 무리하지 않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기분 좋은 가게를 운영한다면 손님들은 어떻게든 그 점을 알아봐주고 몸소 찾아와준다는 사실을. 구석에 꼭꼭 숨어 있어서 찾아가기도 힘들고 초행길엔 충분히 헤맬 법한 장소라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만나야 할 인연은 어떻게든 반드시 서로에게 닿을 운명이기에.
아직도 잘 지켜지지 않는 퇴고 checklist




나는 훗날 자영업을, 병원이든 식당이든 서점이든 형태는 다양하더라도 결국 어떻게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가능하면 꼭 교토의 상점을 닮은 무엇이 되고 싶다. 자극적인 겉모습으로 독자와 고객과 돈을 낚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도, 정직함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그런 곳을 만들어나가고 싶은 바람이랄까.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이 브런치가 내 미래 사업의 데모 버전쯤으로 느껴지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대충 임할 수가 없다. 왠지 여기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나중에도 쉽지 않을 거란 강한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꼴을 보아하니 (여기든 저기든) 자리잡기까진 아마 아주 오래도 걸릴 것 같지만, 그래서 매 순간 내 선택이 도전받고 많이 흔들릴 테지만, 그럴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며 버텨야겠다. '널리 알려지기보다는 깊이 신뢰받기를'. 글도, 사랑도, 일도, 순간의 관심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지금 이 순간 나를 굳이 들여다봐주고 흔쾌히 먼 길 와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항상 보답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쓰고, 사랑하고, 일하기로. 그러다보면 결국 만나질 사람들은 반드시 만나게 될 거라고 믿으면서.



(202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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