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a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re Mar 05. 2020

왁싱의 사회학



제목만 읽고 편견을 생성할 사람들을 위해 미리 밝혀두자면, 이 글은 절대 왁싱 후기가 아니다. 오해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지난번엔 성형 후기를 썼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내 눈만 유심히 보길래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




친한 친구가 언젠가부터 나를 꼬신다. 왁싱의 세계로 들어오라는 당찬 전도다. 마치 아기 때와 같은 매끈한 피부로 돌아갈 수 있다면서, 그간 숨겨지고 잊혔던 부분의 감각이 깨어난다면서 아주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심지어 그는 레이저 시술을 고민하기도 한다. 아예 영구적인 제모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왁싱이 유행이라지만 이런 해괴망측한 놈을 보았나. 나는 단발령을 마주한 개화기 선비의 마음이 되어 혀를 끌끌 찼다. 이런 통탄할 노릇인지고. 조선인이 어찌 브라질리언을 논한단 말인가.

아 그렇다고 진짜 자를 수 있다는 건 아니고요

녀석의 앞에서 단호하게 "내 머리를 자를 수는 있을지언정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 식으로 일갈하고 돌아섰어야 했는데, 내심 궁금한 마음에 관심을 보인 게 화근이었다. 요즘도 자꾸 1+1 이벤트 같은 걸 보내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은 호기심이 꿈틀대기도 한. 왁싱을 하면 어떤 신세계가 펼쳐질까. 그 몸으로 한강을 달리면 얼마나 상쾌할까. 왠지 사르르 꽃향기가 날 것만 같아. 기분 좋은 상상을 이어나가는 도중, 장류진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에게 아이는 마치 그랜드 피아노와 같은 것이었다. 평생 들어본 적이 없는 아주 고귀한 소리가 날 것이다.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면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소리를 알기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당연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감 있는 어른,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그걸 놓을 충분한 공간이 주어져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집 안에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기 전에 그것을 놓을 각이 나오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왁싱도 그럴 것이다. 평생 경험하지 못한 뽀송함을 선사해줄 것이다. 제모를 한 채로 한번 걸어보면 특유의 산뜻함에 매혹될 것이다. 너무 매혹된 나머지 그 이전의 내가 가엾다는 착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나 역시 책임감 있고 합리적인 어른이다. 단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소중한 부분을 생판 남에게 내어줄 순 없다. 큰 맘먹고 시도해본다 해도 혹 시술 중 나도 모르게 야릇한 신음이라도 터져 나오는 날엔 그 길로 자결해야 할 것이다. 행여나 왁서분이 그 소리에 피식하기라도 하면 나는 평생 트라우마에 사로잡힐 것이다. 길가던 누군가가 킥킥대는 소리만 들어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그 장면이 하루 종일 반복 재생될 것이다. 결국 고통 속에 죽어가거나 누굴 죽이게 될 것이다.


게다가 가격비싸다. 왁싱 1회 비용은 평균 7만 원을 웃도는데, 그 비싸다는 필라테스 1회보다 비싸고 꽤 괜찮은 스시 오마카세 가격과 맞먹을 정도다. 좋아하는 스시도 벌벌 떨면서 먹는데 고작 털을 위해 7만 원씩이나 쓸 순 없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매달 꾸준히 그리고 자발적으로 관리를 받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 내킬 때마다 스시도 양껏 먹고 필라테스도 연간회원권 끊어 열심히 다니시는 분들이겠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도 든다. 왁싱이 계급을 나누는 새로운 기준이 되는 건 아닐까. 가장 은밀한 곳에도 흔쾌히 돈을 지불할 여유를 가진 자와 모두에게 드러나보이는 부분에도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자. 세상에서 가장 사뿐한 걸음의 행복을 아는 자와 그런 행복이 존재하는 걸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자. 그들 간의 격차는 <기생충>에 등장하는 반지하와 고급 빌라 사이의 그것에 못지않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사회학도가 아니므로 사회 계층론이나 불평등지수같은 복잡한 개념은 잘 모른다. 하지만 한 달 7만 원을 여유롭게 소비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똑같이 7만 원을 잃었을 때 마음가짐이 다르리라는 건 안다. 당장 7만 원이 없으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의 마음은 온통 전쟁터가 된다는 사실도 안다. 그게 식비나 주거비용 같은 기초생활의 영역이라면 전쟁터가 아니라 지옥이 될 수도 있겠다. 이번 코로나 쇼크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단순히 '어려움'이라고 뭉뚱그리기엔 누군가에게 그 어려움은 너무 구체적이고 당장 위협적다. 찾아보니 취약계층을 위한 생활지원용품 긴급키트 가격은, 우연히도 딱 7만 원이었다. 누군가에겐 터럭의 값이 누군가에겐 생존의 문제라는 이 웃기지도 않은 아이러니를 어쩌면 좋은가.


일탈, 아니 '일털'은 조금 미뤄두기로


우리가 인지하 못하지만 마음에도 털이 자란다. 오래 방치되어 덥수룩해지면 마음의 시야가 캄캄해져 주변을 잘 헤아릴 수 없게 된다. 그런 이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눈먼 괴물이 되어 여기저기 들이박고 다니는 경우도 종종 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안녕한가. 혹시 털북숭이는 아니신가. 어느새 까끌까끌해진 마음을 외면하고만 있는 건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왁싱이 시급한 곳은 사타구니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다. 물론 그건 돈으로만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말끔히 정리한 뒤 돌아서면 금방 또 수북이 자라날 수도 있다. 장점이 있다면 오직 하나, 셀프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디를 단정히 유지할 것인가. 당신의 선택이다. (물론 둘 다 하면 더욱 좋겠다)


(2020.03.05)





매거진의 이전글 널리 알려지기보단 깊이 신뢰받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