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의 이야기다. 토요일 밤, 나는 친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열차에 오른 뒤 오래지 않아 우리는 운 좋게도 나란히 자리에 착석했고, 몇 개의 역을 지날 동안 시답잖은 수다를 떨었다. 돌아오는 휴가엔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다는 둥. 내일 또 출근하기 싫다는 둥. 그러던 와중 갑자기, 내 친구 옆에 앉아있던 여성분이 그에게 대뜸 말을 걸었다. "혹시 친구분(나) 여자 친구 있으세요?"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의 아주 정석적인 오프닝으로. 나는 그걸, 그러니까 낯선 이가 내 앞에서 내 친구에게 내 번호를 물어보려는 아주 어색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벙쪘고 내 친구 역시 '그걸 왜 당사자를 두고 나한테 물어보나'하는 갸우뚱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애인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녀는 조용히 휴대폰을 건넸다. 나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보다 더 파르르 떨면서 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주 민망하게도, 우리는 같은 역에서 같은 문으로 내렸다. 인간이 그렇게 민첩하게움직일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그날 자정쯤 연락이 왔다. 번호를 따고도 연락할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고. 그렇지만이왕 용기 낸 김에 마저 용기 내서 연락드린다고. 불편하셨다면 답장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아무에게나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알고 보니 그녀는 스물두 살의 당찬 대학생이었다.
솔직히 나는 복잡한 심경이 됐다. 물론 우쭐한 마음이 컸다. 지하철에서 번호를 따였으며, 그녀가 (무려) 스물두 살의 여성이며,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꽤나 진지한 눈망울이었다는 사실에.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심도 들었다. 나는 시종일관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그는 나의 어떤 무엇을 보고 결심을 한 걸까. (눈밑 지방 수술이 빛을 발한 것일까) 한껏 꾸민 날도 아니었는데. 친구들과의 내기에서 졌나. 만취한 상황이었나. 내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그를 만나보아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오로지 그의 진지하고 적극적인 태도 덕분이었다. 이 험난한 세상 믿을 이 하나 없는 도시에서, 지하철 옆 옆 자리에 앉은 묘령의 남성에게 번호를 물어볼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이제 서른에 가까워져 가는 화석 학번을 자기 동년배로 오해해가면서. 이 고맙고 대견한 처자에게 소고기든 양고기든 뭐든지 배불리 사먹여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물론 흑심이 아니고 인류애적 차원에서. 아 진짜로요.
사건 당일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 우리는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사실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다. 이십 대 초반과 10분 이상 얘기해본 적이 언제였더라 세어보다가,이십 대 후반 남성의 원숙함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그냥 자신을 놓아버렸다. 동아리 후배 밥 사준다고 생각하지 뭐. 막상 만나보니까 우려했던 것보단 훨씬 편했다. 다행히 일곱 살 차이는 장벽이라기보단 화두가 됐다. 세대가 달라 비교할 주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생활, 미팅, 소개팅, 라이프스타일 등등. 나름 요즘 문화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내 눈동자는 과거를 더듬으면서 자주 초점을 잃었고 나는 영락없이 옛 동아리 술자리의 왕고 선배처럼 '많이 놀아라, 열심히 놀아라' 따위의 조언을 하고 있었다.아주 푼수 같은 꼰대가 되어.
실제로 대화는 점점 멘토링처럼 변질됐다. 내가 일곱 학번 위 선배라는 역할에 과몰입한 탓이다. (이때부터 나이 차이는 본격적으로 장벽이 되기 시작한다) 전공은 무엇이고, 향후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평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본인만의 방법은 있는지. 무얼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지. 인간관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묻고 그가 답하고 내가 되묻는, 이른바 카운슬링의 장이 펼쳐졌다. 소맥 몇 잔을 사이에 두고.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어야 할 두 남녀는 어느샌가 순진한 내담자와 오지라퍼 상담자 사이가 됐다. 그도 자연스레 내게 고민을 토로했고 나는 내 경험 범위 내에서 가장 타당한 조언을 건넸다. 거기서 한술 더 떠, 사회가 이렇게 엉망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따위를 설교하는추태까지부렸다. (그러니까 함부로 일곱 살 연상의 번호를 물어봤다간 이렇게 되는 것이다. 아주 혼나는 거야.) 정작 나도 그렇지 못하면서. 연초에 세웠던 버킷리스트는 저 구석으로 밀쳐두었으면서.아무튼 대화는 나름 재밌고 유익했다.물론 그가 떠들기 좋아하는 나에게 맞춰준 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그가 뭐 이런 또라이가 다 있어,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대화 중 그의 뜬금포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 유노윤호 같다는 얘기 많이 듣죠? 네.. 하하.
나도 그에게 많이 배웠다. 이를테면 번호를 물어보는 용기, 그 용기의 생애에 관해서. 그 용기는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쪼그라들었다가 또 어떻게 다시 부풀어 오르는지에 대해서. 그는 연락을 하고서도 두려웠다고 했다. 타는 지하철 칸마다 한 명씩 번호를 물어보고 다니는 사람쯤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왜 늘 번호를 물어보는 쪽이 매번 주눅 들고 왜소해질 수밖에 없는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한다. 번호를 따이는 일과 물어보는 일 모두에 생소한 나는 그의 똘망똘망한 체험 수기를 마음으로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가 나보다 훨씬 근사한 인생 선배였다. 나도 저 선배님처럼 언젠가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이번 생이 끝나기 전엔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냐고? 우리는 서로 플레이리스트도 공유하고 재밌게 읽었던 책도 추천하는 등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나눴다. 신기하게 비슷한 점도 많았고 당연히 다른 점도 많았다. 하지만 나, 소개팅도 미팅도 해볼 만큼 해본 스물아홉 살 남자. 놀라운 공통점엔 갖은 서사를 부여하면서도 극명한 차이점은 뒷구녕으로 은근슬쩍 감춰버리는, 그런 유치한 운명론의 그늘에서는 벗어난 나이.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비슷하고 어느 정도는 다 다르니까. 여러모로 냉정히 판단해보았으나 아쉽게도 결론은 안녕이었다. 애매하게 질질 끄는 건 오히려 그에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요즘 이런 게 유행이란다
문제는 내 주변 대부분이 이 사건을 믿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 알겠고~ 점심 뭐 먹을지 추천 좀~' 대충 이런 식이다.간혹 믿어주는 녀석들은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린 덕분이라며 폄하하기 일쑤다. 맞다. 실은 나도 여전히 궁금하다. 나를 왜? 그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봤으나 이유와 상황을 뭉뚱그릴 뿐이었다. 그냥 삘이 왔다나 뭐라나. 뭐 어찌 됐건, 장기매매는 아니었고 나는 기분이 좋았으니까 그걸로 됐다. 내가 언제 또 낯선 여성에게 번호를 따여보겠나. 그러니 오늘의 교훈, 아무리 답답해도 밖에선 마스크를 벗지 말 것. 세상 가장 선한 사람의 눈빛을 하고 가끔 눈웃음이나 생글생글 칠 것. 물론 방역도 공중보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당신에게도 있을지 모를 일말의 가능성을 위해서. 이 모든 영광을 코로나에게 돌립니다. 땡큐, 코로나.
(2020.06.17)
사실 이 글을 쓰고 업로드하기까지 오래 고민했다. 내가 교만에 취해 누군가의 진심을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건 아닌가, 그에게는 달랐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너무 내 멋대로만 서술하는 게 아닌가. 죄책감에 사로잡혀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했다. 결론은, 그의 입장을 떠나서 그냥 내 솔직한 심정이니까 내보이기로 한다. (변명하자면 여기는 내 공간이니까...) 그럼에도 한 가지 소망은 있다. 다소 경박하게 썼다고 해도 너무 가볍게 읽히지 않았으면. 그에게는 진심으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이런 경우에 으레 그렇듯,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 하고 시건방을 떠는 건 아무래도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는 당신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리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그러리라에 돈이라도 걸 수 있겠다.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멋진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