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기일에 부쳐
이전 글에서도 줄기차게 언급해왔듯, 아버지는 인생이라는 마운드에서 그리 많은 승수를 쌓지 못했다. 그마저도 마지막 몇 경기는 강판당하시피 했다. 아직도 나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내 인생의 첫 선발투수였던 그가 쓸쓸히 퇴장하던 날. 그가 마운드를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고,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관중석의 나에게 눈을 맞춘다. 이내 라커룸 저 뒤편으로 사라지는 그. 나는 그를 잡을 수 없다. 어떤 외침도 닿지 못한다. 몇 초 남짓한 찰나에 이렇게 커다란 작별이 이루어진다는 게 얼떨떨하다. 기억 속에선 그의 눈이 유독 선명하다. 회한과 후련함이 뒤섞여 있는 그 눈빛. 언제나 부리부리했던 익숙한 그 눈이 아닌, 내가 처음 보는 눈동자. 어쩐지 애달픈 눈망울. 오늘은 그 눈이 떠올라 글을 쓴다.
그의 삶을 되짚어보자면 찬란했던 그의 데뷔를 빼놓을 수 없다.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동네의 촉망받는 수재로 자란 그는, 공부도 잘하고 놀기도 잘 노는 엄친아 캐릭터였다. 어딘가 삐뚤어질 법도 한데 결코 그러지 않았다. (물론, 담배와 술 정도는 했단다) 지역 명문고―서울 명문대 건축과―현대건설 칼입사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친구의 주선으로 만난 애인과 반년만에 결혼에도 골인한다. 거기까진 순탄했다. 그가 자신의 삶을 뒤흔들 두 글자와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창업.
그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시대의 야망 있는 남자들이라면 응당 그랬을 테다. 그의 나이 서른둘, 그가 아직 실패라는 것을 몰랐을 때다.
그는 보란 듯 일 년 만에 퇴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자기 사업을 한다. 한약재 유통업, 제조업, 해외 영업 및 무역업, 경매, 인터넷 사업 등등. 품목을 바꿔가며 이것저것 도전해보지만 손대는 일마다 말아먹기 일쑤다. 심지어 사기를 당해 쪽박을 차기도 한다.
연이은 실패 후 그는 조급해진다. 화끈한 성격이 불을 더 지핀다. 더 큰 사업, 더 신박한 아이템,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일확천금. 당연하게도 그는 성공과 더 멀어진다. 하지만 단단한 그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그가 쓰러지지 않는 대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무너진다. 모두가 멀어지고 혼자 남았을 때쯤 그는 비로소 주저앉는다. 문득 찾아온 병마와 함께.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다. 나는 그가 생의 기로에서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른다. 어떤 확신으로 삶의 방향을 결정했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그는 사업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는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한 번쯤 빛나고 싶었던 것이다.
마치 평범한 삶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도전하고 싶어 꿈틀대는 지금의 나처럼.
사실 그 말은 틀렸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그처럼’ 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그를 닮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가끔 난 근자감에 빠지곤 한다. 히든카드랄 것도 없고 특출난 재능도 없는데 큰 성공에 대한 뽐뿌가 주기적으로 온다. 왠진 몰라도 난 뭘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건 앞서 간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그도 이랬겠구나, 그도 이런 마음으로 퇴사를 지르고 사업을 시작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압류 딱지와 이삿짐센터와 수없이 거쳐간 전셋집들이 파노라마 뷰로 펼쳐진다. 나는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현실로 돌아온다. 내겐 아이스 버킷 챌린지와 같은 그의 실패. 내가 그를 닮았기 때문에 더더욱 간과해서는 안 될 그의 실패. 얼음물은 앞으로도 영원히 쏟아질 것이다. 내겐 아직 그걸 감내할 용기가 없다.
나는 그를 답습하기 싫었다. 앞뒤 재지 않고 지르고 보는 그, 뭐든 일단 호기롭게 도전하는 그, 갈까 말까 할 때는 무조건 가는 그를, 내 안에서 마주하는 족족 도려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자리엔 신중하고 합리적인 나, 조금의 리스크도 용납하지 않는 나, 항상 플랜 B를 생각하는 나를 채워 넣었다. 그러나 저게 뭐람. 이제 보니 그 모습이 단점이란다. 당신이 준 모험심과 야망을 어렵게 버렸는데, 요즘 성공의 요건은 다시 도전의식과 적극성이란다. 인생의 아이러니인가 아니면 삶의 배반인가 아주 우습기만 하다. 이때다 싶어 억눌러 놓은 모험심이 또다시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어떤 기시감이 나를 또 얼어붙게 한다. 서른을 앞둔 지금. 그때의 거침없던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 그라는 오답이 있기에 여기서 멈춰야 하는가. 그라는 오답을 발판 삼아 넘어서야 하는가. 그는 나의 족집게 참고서일까 아니면 영험한 예언서일까.
기일을 맞아 아버지 산소에 갈까 했는데 전국적으로 비 소식이 있다. 그런데 막상 날씨는 또 괜찮다. 오랜만에 보러 내려오라는 것인지 일이 힘드니까 집에서 쉬라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하긴 생전에도 나는 아버지의 의중을 읽을 수 없어서 많이 좌절했다. 이게 사랑한다는 뜻인지, 걱정된다는 뜻인지, 고맙다는 뜻인지, 미안하다는 뜻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답답한 꼴을 보면서 다짐했다. 난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데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써놓고 보니 아차 싶다. 이 글을 읽는다면 그도 내 의중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것까지 닮으면 곤란한데. 저 위 어딘가에서 읽고 있을, 심플한 걸 좋아하는 한 남자를 위해 한 줄 요약을 남겨둔다. 빙빙 돌렸지만 사실 처음부터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요즘 나는 삶 속에서 자주 초라해지고 왜소해진다. 삶이 고작 이것 뿐인가, 내 쓰임이 이것 뿐인가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내가 아는 가장 초라하고 평범한 남자가 보고 싶다. 아빠. 보고 싶다. 보고 싶어요.
(2020.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