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과 열심>
글 쓰는 일만큼은 계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일이 자꾸 나에게 그만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만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요즘 누가 책을 봐.', '앞으로도 책은 아닌 것 같아.', '글 써서 뭐 먹고 살 거니?' 같은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도 계속하고 싶다고 고집부리면서도 점점 혼자 책을 짝사랑하는, 혼자만 글쓰기에 집착하는 스토커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중략) 몇 달 후, 완성한 원고를 편집자에게 보내고 나서 책상에 엎드려 한참 울었다. 왜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막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책을 마지막으로 글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하는데, 이 일은 또 나를 안 좋아하겠지. 이 책은 또 안 팔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엉엉 울었다.
글쓰기는 인간관계와 비슷하다. 만날 때마다 교훈적 이야기만 하고,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삶이란 얼마나 신비롭고 위대한지 찬양하는 사람하고는 1년에 한 번 만나도 충분히 부대낀다. 최근에 있었던 일들, 갑자기 든 생각, 요새 나를 짜증 나게 하는 사람이나 열 받게 만든 사건들을 두서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과는 매일 만나도 할 이야기가 생긴다. 인간관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교훈이나 깨달음이 아닌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이다. 그 쓸모없음이 바로 쓸모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 역시 편지를 쓰는 일이다. 우리가 쓰는 글은 누군가를 향한 편지이며, 마음을 보여 주는 도구다. 그래서 글쓰기에 대해 조언할 때 자주 이 말을 한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심정으로 글을 써 보세요.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 더 많은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어요." 나 역시 누군가에게 편지 쓰듯 글을 쓰는데, 정작 그 글은 나를 향한 편지일 때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