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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Jul 08. 2020

[수플레] 슬픈 로맨스를 공부하는 슬픔

ep.21 Lady gaga - I'll never love again

!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 여운이 짙게 남는 슬픈 결말의 영화일수록 더더욱. 그런 영화가 주요 신을 관통할 만한 좋은 사운드트랙까지 갖추고 있다면, 숱한 면의 밤이 두렵지 않다. 잠들 때까지 영화와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 재생하면 되니까. 원래 음악을 소개하는 매거진이지만 오늘은 노래와 함께 영화까지 두어 편 소개할까 한다. 첫 번째는,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 주연의 <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


Lady Gaga - I'll never love again

당해의 내로라하는 영화음악상을 모두 거머쥔(미국 아카데미 주제가상, 영국 아카데미 음악상, 골든 글로브 주제가상) 이 명작을 아직까지 안 본 사람은 없겠지만, 만약 있다면 정말 부럽습니다. 당신에겐 아직 감동의 순간이 남아있으니까요. 좀 더 파헤쳐보자. 음악 영화답게 OST 앨범이 단연 뛰어나다. 'Shallow'라는 대표곡으로 상을 휩쓴 건 사실이지만, 그 밖에도 좋은 노래가 많다. 레이디 가가의 독보적인 음색과 성량으로 재해석된 'La vie en rose', 사랑에 빠진 남녀의 마음을 노래한 'Always remember us this way' 등. 하지만 나의 원픽은, 극의 최후반부에 등장하는 'I'll never love again'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주인공이 부르는 이 노래. 영화는 쭉 이 한 곡을 위해 달려오고, 극의 모든 내용은 이 한 곡으로 설명되며, 마침내 이 한 곡으로 절정은 해소된다. 자신을 지금까지 있게 해 준 이의 부재를 실감하며 흐느끼듯 부르는 레이디 가가의 표현력이 압권이다. 여태까지 그녀를 싸이코틱한 퍼포먼스 스타라고만 생각해왔던 나반성다. 더 나아가 이 영화를 보기 전, 줄거리만 보고 '눈물샘 억지로 쥐어짜는 클리셰 범벅 고전물'이라고 폄하했던 과거의 나 자신 역시 반성한다. 연인 중 누군가가 꼭 죽어 이별을 하는 로맨스 영화엔 이골이 났다고? 그런 걸 봐도 이젠 하나도 슬프지 않다고? 자신만만하다면 이 영화를 새벽 2시에 보라. 술 한잔을 곁들이면 더욱 좋다. 영화를 다 보고도 감정에 어떤 동요도 없다면 스스로가 사이보그는 아닐까 의심해보라. 유년 시절의 기억이 희미하진 않은가? 혹은 심박수가 지나치게 규칙적이진 않은가?




Ed sheeran - Photograph

누군가 죽고 누군가 법석을 떠는 로맨스 영화를 내친김에 하나 더 소개한다. 에밀리아 클라크와 샘 클라플린 주연의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영국 시골 마을의 잔잔한 느낌과 웅장한 옛 castle의 이모저모가 어우러져 시각적으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참고, <After You>와 <Still Me>라는 제목으로 후속 소설이 연달아 나왔다고 한다) 거기에 믿고 듣는 Ed sheeran의 노래까지 더해 구색을 맞췄다. 재료는 아주 충분하다.


이제 주재료 차례. 교통사고로 척수마비가 된 슈퍼 엘리트 가문의 남자와 그 남자를 돌보기 위해 고용된 시골 집안의 푼수 같은 여자의 사랑 이야기다. 언뜻 넘겨짚으면 단순한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실제론 그보다 훨씬 더 깊고 넓다. 불신이 신뢰로, 신뢰가 사랑으로 바뀌는 여정은 물론이고,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아름답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상대 결론이 죽음과 이별지라도 말이다. 관객 역시 두 주인공의 선택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설사 이해하지 못다 해도,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이나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말 따위를 이젠 어렴풋이 알 수도 있겠다.


이 영화 역시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를 볼 시간이 없다면 링크된 뮤비라도 보길 바란다. 아마 저 영상을 보곤 본편을 안 보고는 못 배길 것이다. 만약 어떤 흥미도 생기지 않는다면 본인이 프로그래밍된 AI는 아닐지 생각해보라...




요즘은 그런―연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는 절체절명의 사랑을 찾기 어려워진 기분이다. 물론 그런 사랑만이 의미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밍밍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서기 2020년, 실로 사소한 이유로 헤어짐을 맞고 적당히 간편하게 별을 통고하는 시대. 짝짓기 프로그램에는 마음 이리저리 휩쓸리는 소시민이 있고, 그 행태를 비난하면서도 막상 동일한 상황에서 자기는 더 심각한 간잽이가 되는 위선자 가득한 시대. 벼운 만남과 이별이 저잣거리에 나뒹구는 대신  로맨스는 멸종 위기에 처한 시대. 그런 시대에 슬픈 로맨스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하나의 사료로 존재한다. 이런 사랑도 있, 누군가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말이 단지 비유가 아닌 사랑도 있, 하고 증언하면서. 먼 훗날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냉정하고 각박해져서 사이보그와 쿨병 환자와 극한의 효율충만이 남는다면, 우리는 새드 무비로 사랑을 공부할지도 모른다. 저런 신기한 일도 있었구나. 옛날 사람들은 좀 미련했네.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화도 로맨스도 결국 무참히 잊 것이. 어딘가에 있는 망국의 왕릉처럼 커다랗고 쓸쓸한 봉분만남긴 채로.  무덤 앞에서 꼬부랑 노인네가 된 나 같은 이들이 마른 눈물을 훔칠지도 모를 일이다.


(2020.07.08)


*제목은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따왔습니다


두 영화 모두 이미 본 사람이라도 아쉬워할 것 없다. 끝판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 넘버 원 새드무비, <얼라이드 Allied>. 이건 굳이 더 설명하지 않겠다. 그냥 봐라. 슬픈 로맨스를 좋아한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Allied(2017)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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