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식이 내게 다시 알려준 것들

by core


바야흐로 대 투자의 시대.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세계적으로 돈을 왕창 푸는 탓에 화폐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은행에 돈을 묶어두는 것은 말 그대로 돈을 천천히 잃는 꼴이라는 뜻. 이렇게 재테크를 강제당하고 있지만 젊은 세대에겐 사실 선택지조차 없다. 부동산은 정부 정책에 힘입어 이미 저 세상으로 가버린 지 오래거든. 유일하게 주식만이 넘치는 유동성을 바탕으로 어서 오라고 손짓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주식판에 뛰어들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까딱하면 익사하는데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고 봐야지. 그래서 나도 시작했다! 그런데 주식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뭐랄까, 돈을 벌기보다는 인생을 배우는 느낌이다. 이것도 수익이라면 수익일까?




1. 지지와 저항은 뒤바뀐다 = 벽을 깨라


차트 분석법에는 지지와 저항이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기준선 아래로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잘 방어되는 경우 '지지선'이라고 부르고, 어떤 기준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계속 부딪혀 내려가는 경우 '저항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지선과 저항선이 서로 뒤바뀌는 순간이 있다. 어떤 순간 가격이 저항선을 뚫어내 그 위에서 가격을 안정적으로 형성하면 그때부터 비로소 이전의 저항선은 지지선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실제 세상도 똑같다. 살아가면서 어떤 커다란 벽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도무지 통과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시험, 너무 어려운 도전, 다들 말리는 진로 등등. 그러나 갖은 노력 끝에 그 벽을 깨고 넘어서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왠지 남들은 못 보는 새로운 무언가가 보이는 듯하다. '과연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였던 마음이 '이것도 해봤는데 뭘!'로 넘어가면서 자신감이 붙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장 내 눈앞의 까마득한 저항선은 언젠간 나의 굳건한 지지선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멋지게 뚫어낼 수만 있다면.

지지와 저항의 예시


2. 상승장은 악재를 무시하고 하락장은 호재를 무시한다 = 이기는 습관의 중요성


주가 상승이 계속되는 중에는 악재가 터져도 대세에는 큰 영향이 없고, 반대로 하락할 때는 호재가 있어도 쉽게 그 하락세를 뒤엎지 못한다. 물리학의 기본 법칙인 '관성의 법칙'이 주식판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역시 일상 속에서도 동일하게 통용된다. '작든 크든 이기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격언을 들어보셨는지. 나는 이제야 그 뜻을 조금 알겠다. 그건 단순한 성과의 누적보다는 인생 자체를 상승장으로 만든다는 데에 진짜 의미가 있다. 그래야 조그만 악재들쯤은 유연하게 넘길 수 있을 테니까. 잠깐 제자리에서 횡보하더라도 금방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아침 기상 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책을 한 달에 몇 권이라도 읽고, 일기를 꼬박꼬박 쓰는 등 작게나마 계획한 것들을 이뤄내면서 성취감을 되새기는 게 결코 가벼운 자기만족에 그치진 않을 테다. 단기간의 주가 폭등이 아닌 꾸준한 우상향을 위함이라면.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르는 거 아냐..? 무섭다 무서워


3. 매도한 종목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 질척대지 마라

매매를 하면 할수록 매수보다 어려운 게 매도라고 느낀다. 얼마 전에도 주가 고점이라고 판단하고 매도 후 재진입할 계획을 세웠는데 웬걸, 팔아치운 종목들이 계속 오르기 시작하더니 신고가를 경신했다. 코스피도 역대 최고치를 찍는다. 후. 이놈의 똥손. 그렇다고 오른 지점에서 다시 살 순 없다. 추격매수를 해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론은 손절이든 익절이든 매도를 하고 난 뒤엔 깔끔히 잊어버려야 한다는 교훈. 처음부터 매도를 하지 말든지, 이미 매도를 했다면 그냥 머릿속에서 지워버려라. 그거 말고도 살 만한 주식 널렸다.

개인적으로 질척거려서 성공한 사람 못 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거 말고도 살 거 널렸다. 비단 주식 매도뿐 아니라 만남과 이별에도 해당한다. 그 주식 없어도 당신의 포트폴리오는 여전하고 그 인간 없어도 당신의 인생은 멀쩡하다. (지금은 아닌 것 같아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주식이든 인간이든 그냥 당신과 인연이 아니었다. 그것뿐이다. 이젠 기억도 희미한 당신의 시시콜콜한 잘못을 되새김질하며 자책하지 마라. 그거 때문에 틀어진 거 아니다. 그의 SNS를 뒤적이거나 하염없이 주변을 맴돌지 마라. 시간 낭비다. 충분히 애도한 뒤 적극적으로 다음 종목을 검토하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Let it go.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나에게도 늘 어렵다.)



4. 감당할 수 있는 시드는 각자 다르다 = 너 자신을 알라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 시절에는 누군가의 수익 인증이 너무나 쉬워 보였다. 비트코인 1000% 수익을 찍은 사람들이나, 주식 한 종목으로만 몇 억을 번 사람들. 나도 돈만 충분했더라면, 알짜 정보만 있었더라면, 나 역시 동일한 성과를 냈을 수 있을 거라고 (건방지게도) 믿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시간을 돌려서 과거로 돌아가도 나는 결코 코인에 거금을 묻어둘 수 없는 인간이다. 어떤 종목이 오른다는 고급 정보를 접했다 한들 거기에 레버리지를 잔뜩 때려 부을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이들은 르다. 각종 악재와 찌라시에 굴하지 않고 조금씩 매수 포지션을 잡은 사람들. 자기 연봉보다 많은 돈으로도 냉철하게 트레이딩/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의 배포와 그릇이 그만한 수익을 가져다준 것이다. 거기엔 분명 내가 넘볼 수 없는 어떤 경지가 있다.

꿀꺽

그래서 이젠 투자자들의 성취를 쉽게 보는 사람들―'야, 돈만 있었으면 나도 벌었다'―을 보면 코웃음이 난다. 비슷한 예로 그런 것들이 있다. 내가 공부만 제대로 했으면 서울대 갔다. 내가 돈 많았으면 기부하면서 살았다. 내가 시간만 있으면 운동 진짜 열심히 했다. 뭔가를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런 이들은 아마 공부와도 기부와도 운동과도 평생 가까워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늘 입만 털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과감히 손절하라. 그리고 3번 항목을 실천하라.


교훈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남들의 성공에 팔랑거리지 말지어다. 동시에 자신의 역량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할지어다. 그리하여 테스 형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자신을 알라.' 네까짓 건 나대지 말고 주제 파악이나 하라는 악담이 아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내 깜냥에 대해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깊은 진리다. 그러므로 주식을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과연 스스로가 얼마 정도의 시드머니를 감당할 수 있는지 차근히 실험해보라. 급등과 폭락에도 일상생활의 붕괴가 없을 정도여야 한다. 여기서 찔리는 사람들 많을 거다. (저요..)




작년부터 이어진 역대급 상승 랠리에 우연히 발을 담그면서 현재 수익률이 꽤 좋다. 그러나 이상하다. 기분이 좋아야 마땅한데 괜히 욕심 삐죽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돈을 좀 더 넣을 걸. 대출받아서 몽땅 투자할 걸. 그때 열 배를 샀으면 지금 얼마야? 하는 끝없는 후회와 아쉬움. 수익이 났는데도 썩 즐겁지가 않은 것이다. 현타가 왔다. 내리면 내린 대로, 오르면 오른 대로 기분이 나쁘면 도대체 언제 행복하지? 행복하려고 돈을 버는 거 아냐?


한편, 스노우폭스 그룹의 김승호 회장은 저서 <돈의 속성>에서 이런 말을 했다.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부자의 기준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는 융자가 없는 본인 소유의 집이고, 둘째는 한국 가구 월평균 소득 541만 1,583원을 넘는 비근로 소득이다. 강남에 수십억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고 억대 연봉자라도 융자가 있고 본인이 일을 해서 버는 수입이 전부라면 부자라 말할 수 없다. 어떤 경제적 문제가 발생하거나 신체적 상해가 생겨도 살고 있는 집이 있고 평균 소득 이상의 수입이 보장된 사람이 부자다. 500만 원 이상의 비근로 소득이 있으려면 20억 원이 넘는 자산이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에 투자되어 있어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욕망 억제능력 소유자다. 세 번째 조건을 충족하려면 한 인간이 자기 삶의 주체적 주인이 되어야 한다.

집을 사는 건 지금으로선 요원한 일이고 월 500만 원 이상의 비근로 소득 역시 상상조차 안되지만, 언젠간 결국 이뤄낼 수 있으리라고 (감히) 믿고 있다. 다만 마지막 조건이 제일 어려워 보인다. 부자와 빈자를 가름하는 조건은 한 인간의 내적 완성도라는 사실. 탐욕에 휘둘리지 않고, 재물에 잡아먹히지 않고, 부단히 인격을 수양하고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이어나가는 것이 리얼 부자가 될 마지막 퍼즐이라는 비밀.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꾸준히 재테크를 하면서 자신에 대한 탐구도 함께 병행하기로 하자. 오늘도 개미는 뚠뚠.


(2021.02.05)




keyword
core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한의사 프로필
구독자 617
매거진의 이전글그 많은 퇴사자는 다 어디서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