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한 한국인의 소울 푸드, 국밥. 그러나 국밥이란 음식은 각종 고급스러운 메뉴들에게 떠밀려 평가절하되거나 희화화되는 경향이 있다. (국밥-충이라는 단어를 보라) 게다가 이 곳 제주에서는 인스타틱한 맛집의 범람으로 인해 국밥이 더욱 격정적으로 소외되고 있기도 하다. 인스타그램에서 #제주국밥 이라는 해시태그는 고작 1k+ 정도에 그치지만 #제주흑돼지 는 무려 487k+이다. 이런 통탄할 노릇을 보았나.
홀로 한 달을 살며 가장 불편한 점은 끼니를 때우는 일이다. 갈치나 해산물 메뉴는 1인분을 잘 팔지 않고, 아직 핫플 고깃집에서 솔플할 정도로 혼밥력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꽤 자주 국밥집을 찾아 헤메는 네이버 지도 위의 하이에나로 변신하곤 했다. 그마저도 리뷰가 많지 않아 슬펐다.
답답하면 니가 뛰든가. 그래서 내가 소개하고자 한다! 별점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에 근거하였으며, 특히 굉장히 입맛이 까다롭고 성격도 지랄 맞은 본인 특성상 맛 이외에도 다양한 감점 요인을 자유분방하게 고려했다는 점을 미리 알려둔다. 예컨대, 1. 김치가 맛이 없으면 감점(국밥집에 김치가 맛없는 게 말이나 되냐) 2. 대기가 너무 길어서 접근성이 떨어진다면 역시 감점(국밥은 그 태생부터 패스트푸드다) 등등. 물론 반대인 경우는 가산점도 아낌없이 주었다. 마지막으로 국밥의 범주는 임의대로 해물뚝배기와 물회까지 광범위하게 차용하였으며, 그 까닭은 후첨스프처럼 추후 설명하기로 하자.
1. 기본 해장국 by 은희네 해장국. 8천 원. (★★☆)
힘겨운 서핑 강습이 끝나고, 허기진 배를 이끌고 갔음에도 그다지 임팩트가 없었던 국밥. 인기 있던 <우진해장국>에 가려고 했으나 웨이팅이 무슨 20팀씩 있다는 얘기를 듣고 과감히 차를 돌려 plan B로 선택한 국밥집. 제주 전역에 지점이 여러 개 있고, 앉자마자 거의 바로 나온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거 이외에 기억나는 점은 잘 모르겠다.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무난한 해장국 맛. literally 해장에 특화된 케이스.
여기는 원래 고등어 쌈밥 맛집인데, 2인 이상만 주문이 가능하다고 하여 눈물을 머금고 전복뚝배기를 시켰다. 적당히 칼칼하고 달달한 해물 육수 뚝배기. 전복은 작은 사이즈로 3-4개 정도, 게 1/2피스와 딱새우 2미가 들어있다. 요컨대 건더기는 별로 없다는 얘기. 그러나 별 세 개를 준 것은, 1. 그 이후에 방문해서 맛본 고등어 쌈밥이 기대 이상이었고, 2. 기본 찬으로 나온 간장게장이 훌륭했기 때문.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간장게장 리필은 추가 요금을 받고 있었다(삼천 원). 그래도 밥 두 공기 시켜서 먹었으므로 기본적인 맛은 인정하는 부분. 여기를 꼭 가야겠다면 인원을 한 명 더 모아서 고등어 쌈밥을 드세요.
명진전복, 연미정 등을 필두로 전복돌솥밥집이 많이들 생겨났는데, 가격은 약속이나 한 듯 1만 5천 원으로 동일하고, 전복의 양 역시 약속이나 한 듯 쥐꼬리다. 제주도 전복은 바다에 손만 집어넣으면 잡힌다는데 인심이 이래서야 되겠나? 여기도 별 세 개인 이유는 본 메뉴 보다는 스끼다시 덕분. 기본 찬으로 광어회 몇 점이 나오고, 고등어 구이가 나온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줬다. (만약 이 두 개가 없었으면 꼴찌였을 거야..) 마지막으로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전복돌솥밥'이 왜 국밥의 분류에 들어가냐 하면, 마지막에 끓는 물 부어서 먹는 누룽지가 아주 뜨끈하니 좋거든. 뜨근한 누룽지는 맛있어. 맛있으면 국밥.
보이는가? 푸지게 담겨있는 전복과 뿔소라의 양이? 무심한 듯 시크하게의 정석을 보여주시는 사장님. 뿔소라도 전복도 야들야들 꼬독꼬독한 식감이 그 신선도를 짐작케 했다. 사실 이 가게는 원래 해물탕으로 유명한 집인데, 다소 이른 시간(오전 10시)에 방문했기 때문에 가볍게 물회를 시켰다. 그런데 웬걸. 띠용. 물회가 이 정도 퀄리티라니?! 그렇다면 해물탕은 안 봐도 대박이겠군. 엄마 모시고 다시 한 번 방문 예정. 기본 찬으로 나오는 전복장이나 고사리 무침 등도 다 일품이었다. (전복장이 맛있어서 따로 택배 주문을 했다) 그리고 물회도 국밥이냐고 묻는 사람들을 위해 첨언. 따뜻한 국물만 국밥이라는 편견을 버려. 밥을 말아먹을 수 있는 건 뭐든지 국밥이다. 여름 별미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국밥계의 이단아, 국밥계의 민트 초코, 물회 만세.
일단 비주얼로 압도해버리고 시작하는 국밥. 저 커다란 면기를 뛰쳐나오려고 하고 있는 더 커다란 돼지 뼈를 보라. 먼저 접짝뼈국이 생소할 분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돼지 뼈를 메밀가루와 무를 넣고 푹 고아 만든 돼지 국밥의 일종으로 부드럽고 걸쭉한 국물이 특징인 제주 향토 음식이다. 실제로도 굉장히 진하고 부드러운데 (맑은 감자탕 느낌) 돼지 냄새는 전혀 안 나서 돼지라고 말 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 특히 이 점포는 맛집으로 이미 소문이 자자한 나머지 오전 9시 오픈부터 가게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며, 심지어 1시 이후엔 재료 소진으로 마감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나는 11시 30분에 가서 30분 대기 후 거의 마지막 손님으로 먹음) 대기가 많아서 별 한 개 뺐는데 너무 맛있어서 반 개 더함. 원래 대기를 죄악시하는 나지만... 이건 기다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싹 다 먹고 모든 접시 설거지하고 나왔다. 다음번엔 고사리 해장국을 꼭 먹어봐야지.
사실 이 포스팅은 이 국밥을 기리기 위해 탄생했다. 모두들 경건한 마음으로 자리에 일어나서 <삼영식당>이 위치한 애월 방향으로 목례 한 번씩들 하시고, 몸국의 정의부터 보고 가자.
돼지고기와 내장, 순대까지 삶아 낸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이면 느끼함이 줄어들고 독특한 맛이 우러나는데, 혼례와 상례 등 제주의 집안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만들었던 행사 전용 음식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대로 제주의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는 레전드 음식, 몸국. '모자반'이라는 갈조류를 넣어 끓여 비주얼이 썩 좋진 않은데, 속는 셈 치고 애월읍에 위치한 이 식당의 몸국을 한번 잡솨보시라.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뀔 것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돼지 육수 특유의 맛이 베이스를 이루며, 거기에 약간의 달큼하면서도 쌉쌀텁텁한 해조류의 감칠맛이 감돈다. 어쩐지 잘 끓여진 미역국의 뒷맛 같달까. 거기에 톡톡 씹히는 모자반의 식감이 바로 이 국밥의 킥. 이게 돼지 특유의 노린내나 느끼함을 잡아줘서 훨씬 안정감이 있다. 살짝 고춧가루를 풀어 알싸함을 더한다면 금상첨화. 갸아악. 이 정도면 1주일에 5몸국 쌉가능. 오뚜기는 뭐하나? 비비고는 뭐하나? 간편식 안 만들고??
여기가 정말 찐 도민 맛집이라고 느낀 포인트. 평일 저녁 혼자 식사를 하는데 옆에서 떠드는 아저씨들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방언이라곤 감수광~ 혼자 옵서예~ 뿐인데. 여하튼 이 집은 22년 된 식당이자 도민들의 단골집으로, 펜션 사장님의 증언에 따르면 특히 둘이 가서 두루치기 2인분에다가 몸국 하나를 시켜 먹으면 소주를 무한 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하.. 생각만 해도 설레는 조합. 다음번에 애월에 또 숙소를 잡는다면 여기 때문일 듯. 몸국에 소주 먹으러 갈 사람 구함.
이처럼 국밥은 지역별로 다채로운 특색과 넓은 종류를 아우르는 엄연한 요리 종목이며, 다른 훌륭한 세계음식과 견주어 봐도 그 섬세함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신선한 재료 + 적당한 간 + 균형 잡힌 육수>의 삼박자를 엄격하게 지켜야만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까다로운 요리 분야이기도 하다. 단순히 다 때려넣어서 팔팔 끓인 뒤에 밥 한 공기 스까묵는다고 다 국밥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게 먹어도 맛이 없진 않지만)
물론 제주를 2박 3일, 3박 4일 예쁜 옷 입고 놀러 오는 관광객들이 몇 끼니 없는 와중에 국밥을 선택하긴 힘들 것이다. 다만 그 중 한 끼라도,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제주도 물가에 지갑과 계좌가 온통 피폐해지거나 매번 유명 맛집에 줄 서는 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다면 근처 국밥집에 들러보라.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국밥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당신을 위로해줄 뜨끈하고도 시원한 국물과 함께. 국밥이여 영원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