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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심장을 쏴라, 파격 연애 예능 리뷰

<체인지 데이즈>와 <환승연애>

by core


지난해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하트 시그널> 시리즈.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폐지된 <짝> 이후 그간 가려웠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 것은 물론, 매력적인 일반인들의 방송 참여 기회를 화끈하게 열어젖히는 등 신세대 감성으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에 열광한 대중은 한때 집단 과몰입―직접 썸을 타는 듯한 착각에 빠지거나 특정 커플의 팬덤을 이루기도 하는―후유증에 잠 못 이루기도 했고 출연진들은 연반인의 반열에 올라 아예 데뷔를 하거나 인플루언서의 지위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어떨까. 고만고만한 재탕 삼탕 프로그램이 지루한 동어반복을 거듭하기를 일 년째, 이렇다 할 독보적 1위 없이 쭉 암흑기가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하트 시그널>이 프렌즈라는 요상한 후속편으로 그 N탕 대열에 합류해서 급 뇌절해버리기도 했고..


그러나 최근 핵 자극적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등장했다는 소식! 관계가 소원해진 커플들이 나와 서로 파트너를 바꿔 데이트를 해보는 <체인지 데이즈>와 이미 헤어진 커플들이 다시 모여 합숙을 하는 <환승 연애>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1. 유교 사회의 심장을 쏴라, <체인지 데이즈>

'백 년은 앞서간 스와핑 예능'이라는 평이 도는 <체인지 데이즈>. 매우 자극적인 소재에다 클립 영상도 기깔나게 잘 뽑는다. 오랜 연애 기간, 성향 차이 등 각기 다른 이유로 이별을 고민하고 있는 세 커플이 등장한다. 합숙 기간 동안 서로의 연인을 바꿔 데이트를 하고, 마지막 날 기존 연인을 선택할지 새로운 이성을 선택할지 고른다는 콘셉트.


헤어짐을 고민했던 사람들이라 뭔가 싱거운 결론이 날 줄 알았는데 웬걸, 까 보니 실상은 다르다. 방송 전 인터뷰에서 '(헤어질 수 있게) 차라리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으면 좋겠다'던 여자 A는 막상 남친이 다른 이성과 나가는 모습에 누구보다 질투를 하고, 평소에 단둘이 만나는 데이트를 꺼리던 남자 B는 여자 친구 C의 차박 데이트 소식에 찐텐 분노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의 균열은 결별로 이어질까. 혹은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게 될까. 결론이 어떻게 나올지 우 궁금.


여기서 새로 인연이 되는 커플이 나온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 다시 잘해보기로 결론이 나는 커플이 있어도 그 나름대로 갈 길이 멀다.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건, 나는 절대 못 나가겠다는 것. 생각만 해도 빡치네. 하지만 순기능도 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이성과의 합법적 데이트(혹은 고민 상담)를 통해 자기의 문제를 되짚어볼 수 있다는 점. 새로운 이성과 함께 있는 시간을 통해 내 진짜 감정에 대해 여실히 깨달을 수 있다는 점. 가끔은 꼭 눈앞에서 목격해야만 비로소 아 거기 있었지, 하고 발견하게 되는 감정들이 있다. 아주 비효율적이고 멍청하기 짝이 없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란 존재니까. 그런 점에서 출연진들의 용기와 또 다가올 선택을 몹시 응원하게 된다. (물론 방송 보면서는 신나게 욕함)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제작 PD의 인터뷰가 인상 깊어 실어놓았다.


"출연진 분들은 심사숙고해 출연 결정하신 분들이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서 출연하신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연인과의) 끈을 팍 놓을 만큼 서로 아무런 정이 남아 있지 않다면 저희를 만나러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애정과 애증이 공존하는 분들이라 할 수 있죠. 쉽게 이별할 수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용기 내서 나와주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 헤어지고 시작된 기막힌 동거, <환승연애>

이미 헤어진 연인 4쌍을 다시 모았다. 누가 누구의 X인지는 서로 모른다. 당사자들끼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서로를 대해야 한다. 이런 그로테스크한 설정 속에서 여느 연애 예능처럼 데이트를 하고 매칭을 진행한다. 벌써 머리가 아프다고? 그러기엔 이르다. 이 예능의 파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거든. 내가 관심 있는 이성의 X와 익명으로 질의응답을 할 기회가 있고(ex.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알려주세요), 매일 저녁 서로 호감 표시를 보낼 때 X의 선택 여부를 알려주기도 한다(ex. "당신의 X는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출연진들뿐 아니라 관객도 시시때때로 멘붕할 수밖에.


헤어진 뒤로 여태껏 후폭풍은 없었다고 말했던 A는 다른 이성의 곁에 있는 X를 보고 비로소 이별을 실감하곤 한다. 전 애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나왔다는 일편단심 스타일 B는, 막상 이성 누구와도 잘 어울리고 해맑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 X의 마음을 타들어가게 한다. C는, 자기 X가 다른 이성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고 '뺏긴 느낌'이라며 눈물짓는다. 본인도 누군가와 즐거운 데이트를 하고 왔음에도 말이다. 이렇듯 출연진 모두가 저마다의 모순을 갖고 있지만, 막상 그 맥락을 알고 나면 그들을 마냥 지탄할 수 없는 입장이 된다. 우리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기 때문.


이렇듯 전 연인에 대한 부질없는 소유욕과 하릴없는 질투가 난무하는 합숙의 현장. 아주 익숙하지만 날 향하지 않는 그의 다정을 보고도 무너질 수 없고, 일그러지는 그녀의 얼굴 목전에서도 다른 이성과 웃으며 이야기해야 하는 아비규환. 다시 잘해보려 출연한 사람도, 새로운 누군가를 위해 출연한 사람도, 불쑥불쑥 등장하는 X의 그늘 앞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 고정 패널로 쌈디가 나오는데 레이디 제인도 함께 출연했으면 어땠을까? 출연진들도 헤어진 연인들 천지인데 패널이라고 못 할게 뭐야. 최소한 게스트로라도 한번 불러줬으면 좋겠다. (아니 나만 쓰레기야?)




만약 나라면 어떨까, 한번 되짚어 보시라. 사회 윤리니 모태신앙이니 하는 편견들은 잠깐 넣어두고 말이다. 발칙한 콘셉트에 질색하며 시청을 거부하던 유교걸/유교보이들에게 특히 권하는 바다. 헤어진 연인과 한 집에서 살아야 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그를 소개하는 소개서를 써준다면? 지금 만나는 애인 앞에서 다른 이와 데이트를 하게 된다면? 혹은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애인을 만난다면? (지금 만나는 연인과 함께 시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마 속이 부글부글 끓고 머리가 지끈지끈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온몸으로 증상이 러난다는 건 그만큼이나 당신이 사랑과 이별에 진지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 모든 걸 보고도 쿨하게 넘기는 인간이 있다면 제보 바랍니다. 세포 샘플 국과수에 넘겨야 할 듯. 아 그런데 잠깐, 아예 한번 다녀온 돌싱들만 출연하는 <돌싱글즈>라는 예능이 나왔다던데. 만간 본방사수 각이다. 진짜 대단들 하다, 방송국 놈들..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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