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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확진자의 일일

by core


수도권에서만 천 명 대가 넘는 확진자를 기록하기 시작한 지 어언 3주째로, 감염자는 늘어만 가는데 주위에서 확진된 케이스를 접하지 못해서 이상하다고? 저도 그게 못내 이상했는데요, 어쩌다 보니 제가 그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상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하하.




DAY 0. 혼돈의 카오스


코로나 검사 상 양성 판정이 뜨면 절대 문자로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전화가 걸려온다. 처음 보지만 왠지 어딘지 알 것만 같은 번호. 왠지 떨리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어.. 양성으로 나오셨어요..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담당 공무원의 위로로 코로나 확진자의 여정은 시작한다. 우선 증상 발현일을 확정하고, 그날로부터 2일 전까지의 동선과 접촉자를 체크한다. 본인의 사진, 카드 사용 내역, 차량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수집한다.


나는 이미 자가격리 중이었기에 접촉자가 많지는 않아 일이 수월하게 끝났다. 문제는 출근한 지 2일 된 직장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점. 다행히 회사에 체류 시간이 길지는 않았고 빠르게 대타를 구해서 말씀드리는 것으로 당분간 시간을 벌었다. 휴.


격리시설 배정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누구는 집 근처의 호텔 1인실에 배정받기도 한다는데, 나는 경기도 광주 어드메에 있는 생활치료센터로 확정이 됐다. 격리시설 배정 시의 가장 큰 문제는 입소 시에는 앰뷸런스가 이송을 해주지만, 퇴소 후에는 알아서 귀가해야 한다는 점이다. 띠용. 이 산골짜기에서 어떻게 가나. 혹시나 해서 물어봤더니 입소 시에 자차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였다. (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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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는 정말 미친 듯한 속도―아마 또 이송할 확진자가 넘치는 까닭이겠다―로 나를 생활치료센터에 데려다 놓고 유유히 떠났다. 산 속이라 공기가 꽤 좋았으나 어차피 나는 열흘 간 맡지 못할 공기라고 생각하니 퍽 우울해졌다. 우려했던 대로 개인실이 아닌 3인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확진자를 비로소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생활치료센터의 규칙은 간단했다. 1. 절대 방 바깥으로 나올 수는 없다는 것. 2. 필요한 약품과 물품은 전화로 신청하면 식사 시간에 맞추어 준다는 것.




DAY 1.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방에 들어가니 이미 덩치 큰 형님이 구석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살짝 무섭;;)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짐을 풀었다. 사흘은 족히 지난 포스를 풍기던 그 형님은 알고 보니 스무 살이었고, 나보다 고작 몇 시간 먼저 들어왔다고 한다. 에이 뭐야 괜히 쫄았네. 이제 보니 곰돌이 푸를 닮은 것 같기도? 앞으로 그를 푸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불을 세팅하고 식어 빠진 도시락을 먹고 있자 우리 병실의 마지막 인원이 들어왔다. 그는 붙임성 좋고 해맑은 총각이었다. 노트북도 없이 달랑 몸만 입소해서 심심했는지 나나 곰돌이 푸에게 말을 걸고 싶어 안달 난 눈치였다. 편의상 그를 티거라고 하자. 약간 눈치가 없는 듯한 티거는 갑자기 코로나 후유증을 검색하고 혼비백산해서 내게 말을 건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탈모가 있대요 걸리면 어떡하죠..?" 그러게요.. 언뜻 보기에도 네가 나보다 숱이 두 배는 많은데 말이죠..

1313.png 그래도 열흘 동안 잘 부탁해요


저녁을 먹으며 확진자의 고충을 나누는 스몰 토크를 했다. 푸는 코로나로 인한 증상 그 자체보다 나로 인해 자가격리 등의 불편을 겪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훨씬 고통스럽다고 했다. 나와 티거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맞다. 같은 날에 입소한 우리는 아마 (별다른 증상이 없는 한) 같은 날에 퇴소하게 될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간단히 환기 시간과 소등 시간의 룰을 정하고 잠에 들었다. 제발 코를 고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KakaoTalk_20210809_152934726_02.jpg 모두가 잠든 새벽


DAY 2.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래, 내 기도를 들어주실 리 없지. 푸는 그 풍채에 걸맞게 밤에 코를 오지게 골았다. 어제 그렇게 타인을 염려하던 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내 근처에 아무것도 던질 게 없어서 다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푸한테 좋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웬걸, 열이 38.7도란다. 오늘뿐 아니라 집에서도 계속 39도까지 열이 났단다. oh.. poor pooh.. 아파서 그런 건데 어쩌겠나. 거기다 대고 코 골지 말라고 뭐라고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앞으로 내가 일찍 잠들기로 다짐했다. 야 근데 낮잠 자면서도 코 고는 건 선 넘는 거 아니냐? 아, 이 병실에선 내가 제일 나이가 많지만 내가 제일 경증 환자다. 열도 없고 증상이라 해봐야 끽해야 기침 정도다. 그런데 이제 미각 소실을 곁들인.

미맹은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다. 4D 영화만 상영되던 입 안에서 갑자기 흑백영화가 상영되는 느낌이랄까. 달고 짠 정도만 미약하게 느껴질 뿐 계란의 고소한 맛도, 콩나물의 슴슴한 향도, 간장 불고기의 감칠맛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식감 차이 정도만 알 수 있었다. 음료도 마찬가지였다. 약간씩 점도가 다를 뿐, 가향 음료수나 요구르트도 전혀 무맛, 사이다는 그냥 탄산수 맛이었다. 신기하면서도 좀 걱정도 됐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일시적 현상이겠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앞으로 와인을 마시지 못하나? 음식을 할 수 없나? 차라리 죽음을 달라..

22.jpg (잠정적) 마지막 와인.. 추천..

그리고 한 가지 알게 된 점. 맛이 안 느껴진다고 해서 식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상한 맛이 나지 않으니 뭔가 헛헛해서 오히려 더 허기가 지는 느낌이다. 놓친 끼니는 저승 가서도 못 찾아먹는다고 하는데, 이러나저러나 세 끼는 꼬박 챙겨 먹어야지. 뭐니 뭐니 해도 시간에 딱딱 맞춰서 밥이 나온다는 점은 맘에 든다.



KakaoTalk_20210809_152934726_03.jpg 그래도 뷰는 좋음

그나저나 이번 격리의 모토가 있다면 '유예하지 않기'다. 예상치 못한 팬데믹에 인생이 휩쓸렸다고 해도, 누군가 휘슬을 불어 경기를 잠시 중단해주는 일 따위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여기서도 똑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고 바깥에서는 여전히 각자가 일상을 힘차게 밀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방학처럼 여기지 않기로 했다. 일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제시간에 일어나 씻고, 이불을 정리하고, 식사를 할 것이다. 미뤄뒀던 책을 읽을 시간이나 부족한 공부를 할 시간은 오히려 더 많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든든해진 것 같기도? 그럼 열흘 뒤에 뵙겠습니다. 다들 건강 조심하세요.


(2021.08.10)



짐짓 괜찮은 척 하지만 처음엔 당황한 것도 사실이다. 평소 많은 경험을 좋아하지만 이런 경험까지 할 줄은 몰랐으니까. 덕분에 일상의 소중함과 건강의 중요성을 절절히 새기고 있다. 이 글도 안 쓰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궁금하다고 성화여서.. 열흘 뒤 건강히 출소(?)하여 일상으로 복귀할 예정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두부 준비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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