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후 열흘이 지나 생활치료센터에서 퇴소를 했다. 이게 얼마 만의 자연광이야.. 바깥공기는 놀라울 정도로 선선해져 있었다. 여름이었다.
각설하고, 생활치료센터에서의 일상에 대해 몇 자 기록해 놓을까 한다. 지난번 확진 후기를 쓰고 나서 검색 유입이 지속적으로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나처럼 뜬금포로 확진된 환자들이 꽤 많은 것 같다. 힘내세요 여러분..
Q. 생활치료센터 배정은 어떻게?
무조건 랜덤이다. 관할 보건소에다 아무리 읍소를 해도 소용없다. 서울과 수도권에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생활치료센터 병실 수가 모자라기도 하고, 애초에 병실만을 배정하는 전담 기관이 있어 관할 보건소에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확진 당일에 여유가 있는 곳으로 랜덤 배정이 된다고 한다. 참고로 나와 비슷한 시기에 확진된 지인은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호텔 1인실에 배정이 됐고, 나는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경기도 광주 생활치료센터의 3인실로 보내졌다. 젠장. 인생사 운이다.
내가 있었던 생활치료센터 전경
Q. 1인실? 2인실? 3인실?
이것도 역시 랜덤이지만, 요새는 워낙 확진자가 많아 1인실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내가 있는 생활치료센터는 2인실 또는 3인실로 무작위 배정을 했다. (가족 단위로 입소 시에는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준다고 한다.) 물론 성별은 고려한다. 연령대도 어느 정도는 고려한 것 같다. 그러나 증상은 딱히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아주 경미했는데 반해 한 명은 계속 설사를 하고 다른 한 명은 계속 열이 펄펄 끓었다.) 참고로 한번 입소하면 방을 바꾸기는 어려운 시스템이다. 옆 사람이 코를 골아서 불편해요 등의 이의 제기는 먹히지 않는다는 뜻. 한번 배정되면 퇴소 시까지 함께 지내야 하니까 룸메들에게 민폐 끼치지 말자. 확진자들을 한 방에 몰아넣는다니 무섭다고? 그러게나 말이다. 여기 와서 느낀 점. 생활치료센터는 '치료'가 목적인 곳이 아니라 '격리'가 목적인 곳이다. 확진자들을 사회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시설. 격리라는 게 이렇게 서늘하고도 무서운 단어인지 처음 알았다.
생병 날 것 같다는 인터뷰에 극 공감
Q. 밥은 잘 나오나요?
모든 생활치료센터를 가본 것이 아니기에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내가 있었던 곳은 매우 별로였다. 세븐일레븐 도시락으로 아침/점심/저녁을 주는데 마지막에는 너무 물려서 아예 손도 안 대고 버렸다. 격리 다이어트. 물론 도시락만 주는 것은 아니고 과일이나 음료수, 과자, 케이크 등을 간식으로 다양하게 넣어준다. 그러나 그냥 그럴 예산으로 식사 퀄리티를 좀 올리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식사 가지고 이의 제기를 해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 참고. 선택지는 죽 또는 도시락 밖에 없음. 물론 이것도 생활치료센터 케바케가 심한 듯하다. 모 생활치료센터는 공장에서 나온 도시락이 아닌 근처 반찬 가게에서 위탁 생산한 건강한 밥을 준다던데.. 부들..
참고로 폐기물 통이 식탁 대용
친구들이 보내준 간식. 고맙다 친구들아.. 근데 맛이 안 느껴졌어..
Q. 약은 주나요?
현재 코로나 치료제가 마땅히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따라서 생활치료센터에서는 대증 치료―발생한 증상 억제만을 위한 치료―를 위주로 한다. 나는 기침약과 가래약을 타서 먹었는데, 약이 잘 듣지 않는 편이라 약을 몇 번 교체했다. 그마저도 약이 두 종류뿐이라 선택지가 얼마 없었지만. 의사 선생님과의 영상통화 면담에서는 '그냥 미지근한 물 많이 드시라'는 조언을 들었다. 하하. 그러믄요.
다행히 퇴소할 때쯤에는 증상이 좀 나아졌는데, 상비약으로 챙기기 위해 마지막 날 약을 조금 더 요청했더니 돌아온 간호사 선생님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지금 약 받으시면 증상 지속된 걸로 간주해서 격리 기간 늘어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어우, 그럴 리가요. 생각해보니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둘러대곤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코로나 치료 참 쉽죠?
찾아본 블로그에 따르면, 증상이 계속될 경우 코로나 전담 병원으로 이송되어 추가 격리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거기 가면 다른 약을 줄까? 글쎄. 어차피 코로나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특별한 치료를 기대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다.
어쩌다 보니 의료 폐기물 봉지와 깔맞춤 룩
Q.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하루 2번, 준비된 의료기기로 바이탈(혈압/맥박/호흡수/산소포화도/체온)을 체크하고 증상을 자가 기록해서 온라인으로 제출한다. 이외의 일정은 없다. 안내 방송에 따라 오전 8시/오후 12시/오후 6시에 문 앞에 준비된 식사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침대 위에서 보낸다. 역시 생활치료센터마다 시설이 다르겠지만, 내가 있었던 곳에 책상 따위는 없었다. 하루 종일 누웠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허리가 지끈거려서 혼났다. 심심하지 않으려면 노트북은 필수고, 각자 책을 가져오거나 시간 때울 무언가를 챙겨 오셔도 좋을 듯. 가져온 물건은 감염 위험으로 버리고 가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요새는 그러지 않는 것 같다. 입소 시 어떠한 소지품 검사도 없었고 퇴소 시 따로 방역 과정도 없었다.
룸큐 없었으면 진짜 우울증 걸렸을지도
Q. 퇴소 시 검사는 어떻게 하나요?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퇴소 시 검사는 없다. 여기서 하는 검사라고는 입소 시에 했던 폐 엑스레이가 유일했다. 의료진 대면 진료는 아예 없다. 모든 것은 비대면(영상 통화)으로 이루어진다. 적어도 비인두 도말 PCR 검사(코 찌르는 검사)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코로나 확진이 되면 몸에서 면역 반응(a.k.a.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일어나 시간이 지나면 바이러스의 잔해가 남는다고 한다. 그러나 비인두 도말 검사에서는 살아있는 바이러스와 죽은 바이러스 잔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번 양성이 뜨면 2-3개월 정도는 계속 양성이 뜬다. 그래서 추가 검사는 무의미하므로 시행하지 않는다. 그럼 전파력 상실은 어떻게 판단하냐고? 1. 증상일 기준 열흘 정도 지나고 2. 발열 등의 증세가 없으면 안전하다고 본다. 그래서 생활치료센터의 격리일은 증상 발현일로부터 10일이고, 퇴소 시 증상이 지속될 경우 격리 기간이 늘어날 수도 있다.
Q. 격리 해제 후 일상생활은?
격리 끝나고는 놀라울 정도로 방치되어서 들은 부분이 없다. 추후 백신은 맞아야 하는지, 일상에 바로 복귀를 해도 되는지 등등에 대한 지침을 어디서도 말해주지 않아서 꽤나 난감했다. 그래서 직접 찾아봤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코로나 확진자라고 하더라도 백신 접종이 권고되며, 일상 복귀는 바로 해도 되지만 일주일 정도는 외출 자제를 권고한다고 한다.
이밖에도 깨알 정보들이 많다. 예컨대 백신 접종자는 밀접 접촉이라도 자가 격리 면제다. 혹시 모를 격리의 불편을 피하기 위하서라도 백신을 맞아야겠다.
그리고 격리자들 대상으로 정부 지원금이 있다. 격리 해제 후 1. 관할 보건소에서 격리 확인서를 문자로 받고, 2. 관할 주민센터에 직접 방문하여 신청하면 들어온다. 2인 가구 기준으로 14일 격리를 하면 최대 80만 원 정도 지급된다고 하니 참고할 것. 확진 후 생활치료센터에 입원하면 실비로 입원 비용도 나온다고 한다.
하나 더. 확진 시 격리일은 10일이고, 확진자의 밀접 접촉자는 14일 자가격리가 의무다. 이런 차이 때문에 다소 우스운 상황이 발생하는데, 정작 확진자인 나는 퇴소 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데 무증상자 엄마는 아직도 격리를 하고 계신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죄송합니다 오마니..
아직 잔기침이 남아 있어서 본의 아니게 기침을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아직도 바이러스가 남아 있는 게 아니냐고 은근 곁에 있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퍽 서럽다. 특히 엄마가 은근 불안해하셔서 식사도 따로 하고 있다. 흑흑.. 불효자는 웁니다..
감금이 왜 형벌인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던 지난 열흘. 다행히 증상은 심하지 않았지만, 나 때문에 자가격리를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시설 격리라는 아주 고달픈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점에서 코로나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되겠다 싶다. 세상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경험도 있다는 사실. 농으로 코로나는 못된 사람들만 걸린다는 얘기가 있던데, 격리하면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제가 더 착하게 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조심하세요. 물론 조심한다고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2021.08.18)
그나저나 최근 생활치료센터에서 50대 확진자가 갑자기 사망해 논란이 되고 있다. 38도의 고열이 나서 익일 이송 조치를 취하려고 했는데, 환자가 새벽에 돌연 사망했다는 것이다. 사실 지내보니까 상황이 얼추 이해가 된다. 38도 정도는 여기선 꽤나 흔한 편이고, 직접 대면 진료를 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 상태 파악이 더디다. 추가 엑스레이 검사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니 의료진들 입장에서도 응급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유족 입장에서는 멀쩡했던 가족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는데 별다른 처치도 없이 방치되었다고 하니 미칠 노릇일 테고. 양쪽 모두의 입장을 아는 상황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