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와 <모멸감>
'모멸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준다 해도 반드시 지키려는 그 무엇, 사람이 사람으로 존립할 수 있는 원초적인 토대를 짓밟는다. 그런 처지에 몰리면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느끼면서 자신 또는 남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모욕과 모멸이 거의 동의어로 쓰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모멸은 '모욕'과 '경멸'(또는 멸시)의 의미가 함께 섞여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모욕은 적나라하게 가해지는 공격적인 언행에 가깝고, 경멸 또는 멸시는 은연중에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에 가깝다. 모욕에는 적대적인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는 반면, 경멸에는 그것이 분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모욕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무심코 경멸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모멸은 후자의 가능성까지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멸은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라고 할 수 있다.'
(...)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은 자신이 맞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에 반해 굴복한다는 느낌 그 자체이다. 고문 피해자 분이 끝까지 털어놓는 것을 망설였던 기억이 뭔지 아느냐. 고문자들이 그분을 실컷 때린 후에 "나 담배 피우면서 쉬는 동안 노래나 불러봐라"라고 했단다. 그분은 그때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노래했는가를 털어놓으면서 괴로워했다. 그분에게 가장 큰 고통은 심한 구타가 아니라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자기 자신이었다. (...)
디피는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분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길. 오늘도 어디선가 홀로 울고 있을 누군가에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