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a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re Nov 29. 2021

글쓰기로 영앤리치



최근 브런치에서 온 결산 리포트. 별 것 아닌 리포트일지 몰라도 그간 '작가'라는 타이틀로 활동했던 시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브런치 팀의 디테일한 이벤트에 감사를.

글을 쓴 지 어느새 977일이라고 한다. 올해를 넘기면 1000일이라니 감개가 무량하다. 무언가를 천일 동안 꾸준히 해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꽤 기념할만한 성취다.


올해 초에 일 년 치 버킷리스트를 적으면서, <글쓰기>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었다. 거기엔 올 한 해 꼭 달성하고 싶은 글쓰기 목표들을 적었다. 1) 구독자 300명 이상, 2) 조회수 1만 뷰 이상의 글 만들기, 3) 월 2회 이상 꾸준히 쓰기 등등.

그때만 해도 막연한 목표에 불과했지만 일 년을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꽤 많은 항목이 이루어져 있다. 구독자도 어느덧 400명이 되었고, 1만 뷰를 터치한 글은 4개나 된다. 올해 발행한 글이 (지금 이 글까지) 총 30개니 '월 2회' 역시 초과 달성이다. 브런치북을 만들어 공모전에 응모까지 한 건 덤. 꾸준히 하다 보니 성과가 있기는 있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이 큰 벽이었다. 사실 내 구독자들 중에는 나의 실제 지인들이 많다. 엄마, 친누나를 비롯해, 절친한 친구들, 학교 동기, 선/후배, 외부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 등등. 더 멀게는 친구의 가족들이나 친구의 여자 친구도 있고, 심지어 헤어진 인연들도 (아직)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불특정 다수의 실친들이 있는 공간에 내 자아를 풀어헤치는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주로 찌질한 궁상이나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나로서는 더더욱.


하지만 그럼에도 쓰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스스로가 조금 더 분명해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사실에 대해서도, 어렴풋한 감정에 대해서도, 쓰면 쓸수록 나는 분명히 분명해지고 있다. 내가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경계가 명확해지고 어디서 빌려온 감상과 나만이 느끼는 감정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점점 자아가 또렷해지는 기분이랄까. 요즘 같은 아리까리한 세상 속에선 특히 얻기 어려운 상쾌한 감각이다. 이런 말이 있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 요컨대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만이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분명한 자아'는 어떤 효용이 있는가. 삶에 있어서 글쓰기가 주는 실질적인 도움은 무엇인가. 고작 상쾌함 따위를 느끼자고 새벽같이 글을 쓰고, 시시때때로 글을 읽는 것은 아닐 테다. 여기에 대한 답은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40세에 첫 소설을 쓰고 나서 다시 40년 가까이를 더 살았으면서도 나는 내가 아직 충분히 젊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젊다는 건 체력이나 용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옳지 못한 일에 분노하고 부조리에 고뇌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을 말하는데, 이런 정신의 탄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각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글쓰기가 아닌가 한다.

<세상에 예쁜 것>, 박완서

세계적 석학 에리히 프롬도 선생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듯하다. "늙기 전에 생산적으로 살았던 사람은 결코 피폐해지지 않는다. 물론 나이가 들면 체력은 떨어지겠지만, 그가 생산적으로 사는 동안 개발한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자질들이 계속 성장한다." 


두 현자의 말을 감히 요즘 언어로 바꿔 말하자면 이렇다. 글쓰기는 정신세계의 영앤리치를 추구하는 일이라고. 쓰면 쓸수록 젊어지고(young), 시간을 더할수록 풍부해지는(rich) 글쓰기의 세계. 단순히 정신의 후퇴를 막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되고 성장하고 다채로워지는 것이라니. 모니터 앞에서 고심한 시간은 결코 도망가지 않는 것이라니. 안티에이징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200만 헬스 유튜버로 더 유명한 가수 김종국은 운동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이런 어록을 남겼다.

(운동은) 하지 않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지,
어떤 운동을 하느냐, 얼마만큼의 운동을 하느냐 차이가 아닙니다.
맨몸 스쿼트 10번, 단순히 그 정도라도 삶에 운동을 꼭 추가하시기 바랍니다.  


글이 쌓여갈수록 느끼지만 글쓰기는 다른 무엇보다 '운동'과 꼭 닮았다. 당장 어떤 변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점도 그렇고, 한번 몰입하게 되면 그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다는 점도 그렇다. 영상을 보면 그는 (구독자들에게) 제발 운동을 하시라고 거의 읍소를 하는데, 나도 그의 애타는 심정에 적극 공감한다. 그가 더 많은 사람이 운동을 하길 바라듯 나 역시 더 많은 사람이 글을 쓰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좋은 걸 나만 혼자 알고 있기엔 너무 안타까우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운동 전도사인 그의 말을 빌려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어떤 주제의 글을 쓰느냐, 얼마만큼 아름다운 글을 쓰느냐 차이가 아닙니다. 오늘의 일기 한 줄, 단순히 그 정도라도 삶에 글쓰기를 꼭 추가하시기를. 정신과 영혼의 영앤리치를 위해서.


(2021.11.2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