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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Aug 10. 2023

교통사고를 당하듯 승진을 했다

올해 첫 휴가를 내고 3일 동안 혼자 조용히 푹 쉬고 돌아온 복귀 첫 날이었다. 그날따라 출근길이 개운하기도 했다. 하반기도 잘 해나갈 수 있겠다는 경쾌한 확신도 들었다.


그렇게 참석한 하반기 첫 팀 미팅. 거기서 대표님은 대뜸 인사발령 발표를 했다. 하반기부터는 종훈님이 팀장을 하세요. 예??? 제가요?? 이게 무슨 일이람. 휴가 복귀 첫 날, 교통사고를 당하듯 승진을 했다.



나는 어떤 팀원이었던가


갑자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충분히 좋은 팀원이었는가?


나는 팀장님에게 바락바락 대드는 팀원이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대놓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캐릭터였다. 납득이 안 가는 의사결정은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우리 팀장님을 비롯해, 다른 팀 팀장이건, 대표건 ‘맞짱’을 뜨고 다녔다. 어느새 팀장님이 내 눈치를 보시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납득하지 않으면 몰입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여럿 고생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첫 팀장 커리어를 우리 팀에서 시작한 팀장님도 난처하셨을 것이다. 위에선 업무가 산사태처럼 쏟아내려오지, 직속 팀원은 소나무처럼 뻣뻣하지...  

어느샌가부터 팀장님의 책상 위에 이런 도서가 있었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확실히 나는 그런 온화한 팀장님 덕분에 성장했다. 그는 내 의견을 경청해주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주고,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그 덕분에 나는 주관이 뚜렷하고, 솔직한 의사소통이 강점이고, 성과를 내는 팀원으로 성장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전한다. 감사했습니다!!!!

 

타운홀 발표 때. 마이크가 어색해서 머쓱코쓱


팀장과 에이스 사이


<슬램덩크>에 비유하면 이렇다. 어떤 팀이든 채치수 같은 ‘주장’이 있고, 서태웅 같은 ‘에이스’가 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에이스‘의 역할을 곧잘 해냈다. 기회가 오면 득점을 하고, 성과의 폭죽을 펑펑 터트리는 공격수의 역할 말이다. 돋보이는 일을 많이 한 덕에 경영진으로부터 신뢰도 많이 쌓고 기회도 커졌다.


얼굴이 서태웅이라는 얘기는 아님

하지만 ‘주장’은 다르다. ‘에이스’를 비롯한 팀원들을 묵묵하게 받쳐주는 일과, 드러나지 않는데 꼭 필요한 일과, 팀을 위해 반드시 드러내야 하는 일들을 해내야만 한다. 급변하는 대외 환경과 사내 이슈에 흔들리지 않고 대응할 줄 알아야 한다. ‘에이스’의 일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일들이다. (생각해보니 북산의 주장이 서태웅이었다면 좀 이상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에이스의 역할을 누구에게 넘기고 주장 완장을 성공적으로 받아낼 수 있을까. 약간 부담이 되는 포인트.



마이크로매니징과 자유방임주의 사이


대표님은 자타공인 슈퍼 마이크로매니저다. 일부 팀원은 나노매니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나 역시 벌써 대표님 닮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아마 기준이 높아서 그런 것 같다. 하하.


마이크로매니징을 하지 않고도 일을 되게 하는 방법에 대해, 높은 기준에 다른 사람들을 동기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팀원들의 업무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는 방법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는 어떻게 하면 나의 재미와 성과를 유지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만 해왔다면, 이제부터 나를 비롯한 여섯 명의 재미와 생산성과 성과를 동시에 챙겨야 한다. 그러면서 평가도 해야 한다. 햐. 참으로 무겁다.

팀원들이 챙겨준 케이크.. 감덩


성선설과 성악설 사이 : 성약(弱)설

신수정 교수의 칼럼에서는 이런 글이 있었다.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들에 대해 인사이트를 주는 글이 많으니 그의 책은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사람은 약한 존재라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 누가 옆에 있느냐, 어떤 문화 속에 있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성과와 방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비록 여섯 명이 전부인 작은 스쿼드지만 나는 방향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으로서 커다란 책임감을 느낀다. 비록 작긴 하더라도 비좁지는 않은 팀이 되도록 할 것이다.



마치며


지난 달엔 키우던 식물 분갈이를 해주었다. 갑자기 식물이 푸릇푸릇 커버린 탓에 갑자기 두 배 크기 화분으로 옮기게 되었다. 처음엔 흙이 모자라진 않을지, 갑자기 넓어진 탓에 식물이 균형을 못 잡진 않을지 걱정했다. 생각보다 뿌리가 더 안 내리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화분은 더없이 푸르게 자라고 있다. 꽃봉오리도 두 개나 맺었고. 참 기특하다.


어쩌면 사는 일도 계속해서 분갈이를 하는 일이 아닐까. 뿌리를 바닥 깊이 뻗어보고, 이쪽 저쪽 잔뿌리도 내어보고, 아무리 봐도 더 갈 구석이 없다 싶으면, 아예 새로운 판으로 옮겨야 한다. 승진이 그렇고, 커리어가 그렇고, 직업이 그럴 것이다. 누가 알아서 내게 꼭 맞는 사이즈의 화분을 골라준다거나 적당히 때맞춰서 단계별로 옮겨주는 일 따위는 없다. 한번 옮길 때 과감하게 옮겨야 한다. 그래야 확 커질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잔뿌리는 조금 뽑힐 수 있다. 흙도 처음엔 많이 부족할 테다. 새 화분에 적응하지 못해 오히려 처음엔 시들부들 말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옮겨야 한다. 나무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는, 세상의 어떤 화분도 좁으니까.


나 역시도 새로운 화분에서 열심히 뿌리를 뻗어봐야지. 나 화이팅.


(202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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