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2004.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의 그럭저럭 봐줄 만한 외모와, 큰 이상 없이 정신을 지탱해주는 튼튼한 육체와, 남들과 무리 없이 섞일 수 있는 성정과, 가끔가다 도드라지는 나의 가벼운 재주와, 세상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는 취향과 감수성 등등.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한 뒤에야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맞겠다. 하지만 그런 나의 조그마한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들이 가끔 있는데, 그 깊이나 높이를 헤아릴 수도 없이 까마득한 타인의 위대함을 마주칠 때가 그러하다. 2004년 발표된 <그 남자네 집>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러하였다.
처음 몇 꼭지를 읽으면서는 아, 그래, 박완서라는 작가를 왜 거장이라고 하는지 알겠다, 국어를 정말 아름답게 구사하는 작가구나, 하는 단순한 이해의 수준에 그쳤다. 그러다가 점차 그 유려한 표현과 선명한 감정 묘사에 순간순간 감탄사로 멈춰서기도 하고, 셀 수 없는 명언 퍼레이드와 흡인력 있는 문장들에 정신이 아득해지기도 할 때에야 비로소, 이 작가는 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초인이다, 이 세련됨은 도저히 배움으로 갈고 닦아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는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책의 뒤편에 첨부되어 있는 작가연보를 접하며 더욱 확고해졌다.
그녀는 1931년에 태어나 일제 강점과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굵직한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내면서도, 그 양분이라곤 없는 메마르고 척박한 토양(여성으로는 훨씬 더 가혹했을 현실 속)에서 마흔에 이르러서야 첫 작품을 들고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 후 81세에 세상을 등지기까지 수십 편의 단편과 굵직굵직한 장편, 산문집, 소설집 등을 거의 매 해에 걸쳐, 늦은 등단으로 쌓인 에너지를 분출하듯이 발표하는데, 이를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그녀의 위대함 앞에서 순간 나는 굉장히 보잘 것 없어져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편안한 시대에서 태어나, 삶에서의 도전이라곤 대학 입시 따위가 전부였고, 복에 겨워 내게 오는 사랑을 걷어차기도 하고 지겨워한 적도 있는데, 그녀는 전쟁 속에서도 사랑을 하고, 삶을 일구고, 그것을 다시 재료로 이렇게 자신의 재능을 눈부시게 펼쳐 보인다니. 그런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그녀가 부러워져 견딜 수 없으면서도, 나는 어쩌자고 한국 문학사를 풍미한 위인과 나를 견주며 스스로 작아지기를 자처하는가 싶어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어느새 나는 그녀의 다른 소설들을 당장 찾아 읽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어지는 모순적인 욕망 속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살아 숨 쉬는 재치와 풍부한 감수성을 또 다시 느끼고 싶은 독자로서의 호기심과, 그 커다랗고 현현한 재능 앞에서 한없이 평범해지고 사소해져 결국 부스러기가 되고 마는, 그런 초라한 나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의 갈등이었다.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그녀의 매력은 다른 어떤 누구도 그와 나란히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까닭에, 결국 나는 그것을 감히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동시대에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가슴 깊이 감사할 뿐.
나처럼 내재된 능력에 비해 욕심이 과한 범인들이 살아가기엔 너무 팍팍한 세상이지만, 내일도 박완서를 찾으러 서점에 가리라. 그녀의 넘볼 수 없는 천재성에 또다시 우두커니가 된다고 하더라도. 훔쳐가고 싶은 문장들이 쌓이고 쌓여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무나 커다란 그녀의 등불이 나의 희미한 불빛을 오간데 없이 만들지라도.
(2019.03.21.)
함께 들을 노래 : 사비나 앤 드론즈 - so when it go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