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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y View Today

서초동 제5화

the school discipline bill

by 코리디언

드라마 〈서초동〉 5화: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걸까?

요즘 ‘서초동’이라는 드라마를 간간히 보고 있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한국드라마를 손쉽게 보게 될 줄은 유학 초창기에는 상상하지 못한 미래였다.

옛날에는 한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를 VHS 비디오로 복사를 해 놓으면 한인 가게에서 비디오당 얼마씩을 지불하고 1일에서 3일 사이에 보고 다시 돌려주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거의 방영과 동시에 볼 수도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을 시간도 인내심도 없어서 유튜브에서 요약본을 보는데 얼마 전 방영된 에피소드가 내 관심을 이끌었다.

나는 교육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한국에서도 아이들을 가르쳤고, 이곳 캐나다에서도 교육학을 공부하고, 학교에서 근무를 했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L3avDf1wls

자료: Youtube


위 영상은 서초동 5화 요약본으로,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 혐의로 고소하는 장면이다. 중학생들이 “선생님이 우리를 때렸다”라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극 중 주인공인으로 변호사역할을 맡은 이종석이 의뢰인인 선생님의 진술과, 고소한 학생들을 직접 만나서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파악하는 장면이다.


이 드라마에서 나는 몇 가지 충격을 받았다.


첫째로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고소한다는 설정이었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옛말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다.

임금(君)과 스승(師), 아버지(父)는 하나처럼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는 단지 위계의 강조가 아니라,

사람의 성장에 절대적 영향을 주는 존재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문화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위계보다 영향력과 책임에 대한 존중의 표현일 것이다.

현대 교육에서 교사는 왕도, 부모도 아니다.

하지만 학생의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존재인 건 분명하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지금은 너무 낡은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교실 안에서 교사는 권위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교육자이며,

학생은 억눌림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다.

교육이 살아 있으려면, 교실에 질서도, 따뜻함도 함께 있어야 한다.

‘군사부일체’의 의미는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살아 있어야 할까? 라는 의구심이 생긴다.

또, 교사자신과, 학부모, 학생들은 ‘교사의 권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 충격은 부모들의 태도였다.

선생님을 고소하는 고소장에는 아이들의 이름이 아닌 부모의 이름으로 고소를 한 것이다. 드라마 장면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부모들이 이렇게 행동한 것에는 자녀들의 말만 듣고,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 엄마에게 선생님들의 부당함을 호소할 때 ‘선생님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라며 선생님 편을 들어줄 때 억울했다.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엄마는 그것이 나의 교육에 더 유익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나의 학업에 그리고 나의 학창 시절과 인간관계를 배우는데 훨씬 좋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에 나온 부모는 사건의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전에 선생님을 고소하는 행동을 먼저 했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고스란히 자녀들의 인격형성이나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고소를 당한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학교에서 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교사의 자화상이랄까? 인간적인 동정심이 느껴졌다.

내가 아는 지인 부부는 두 분 다 한국에 계실 때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계셨다.

특정한 그룹을 보편적이나 일반적으로 몰아가면 안 되겠지만, 그때에도 드라마에 나오는 학부모님들이 계셨고, 교권에 대한 존중과 보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나는 옛날 사람이며, 한국 사회를 떠난 지 오래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직접 느끼기보다는 드라마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보고 느끼기 때문에 내 생각이 진부하고, 내 의견이 직접 그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 생각하시고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시기적으로 공교롭게 최근에 2025~2026년, 미국과 캐나다에서 학생의 행동 규제와 교사의 권위 회복을 위한 정책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웨스트버지니아주의 SB199, 캐나다에서는 퀘벡주의 'vous' 사용 의무화에 대한 교육 법안이 통과됐다.


기존의 웨스트버지니아 교육청 정책(Policy 4373)은 학생 행동에 대한 지침을 제공했지만, 징계 절차는 모호하고 일관성이 부족했으며, 2023년에 통과된 HB 2890는 중고등학생(6–12학년)을 대상으로 시행된 반면, 최근에 통과된 웨스트버지니아의 상원 법안 SB199체계적인 개입 중심의 징계법으로 유치원부터 초등 6학년까지의 학생이 폭력적이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할 경우, 교사가 즉각적으로 해당 학생을 교실에서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이 법은 단순한 퇴출에 그치지 않고, 심리적 평가와 행동 중재 계획 수립, 그리고 반복적 행동 시 대안 학습 프로그램 또는 정신건강 서비스 연계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체계는 단지 학생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고 지속적인 개입을 통해 개선을 유도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한 교사의 판단권을 존중하며, 명확한 교실 내 질서의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교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

[참조:

https://www.wvlegislature.gov/bill_status/bills_text.cfm?billdoc=sb199%20intr.htm&yr=2025&sesstype=RS&i=199#:~:text=To%20promote%20a%20teaching%20and,following%20the%20schoolwide%20discipline%20policy.]


한편, 퀘벡은 2026년부터 모든 학생에게 교사와 직원에게 공식 존칭(“vous” – 프랑스어에서 Tu-2인칭 ‘너’에 대한 존칭으로 쓰인다.)과 호칭(“Monsieur”, “Madame” – 영어에 Mr. Mrs에 해당한다.)을 사용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이는 예의와 존중의 표현을 제도화함으로써, 교사에 대한 권위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 정책은 프랑스어 문화권 특유의 존대 표현이 가진 사회적 상징성에 기반한다. 다만, 많은 교육자와 전문가들은 이를 과도한 규제 혹은 상징적 조치로 평가하며, 실제 존중은 언어적 형식보다는 관계성과 교육 방식을 통해 길러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참조:https://www.cbc.ca/news/canada/montreal/quebec-education-civility-schools-1.7524977#:~:text=Social%20Sharing,schools%20starting%20next%20school%20year.]


두 정책은 각각 실질적 행동 개입과 상징적 언어 예절이라는 다른 층위에서 교권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 웨스트버지니아의 SB199는 실제 수업 방해 상황에 대한 직접적이고 반복 가능한 조치를 명시하여 교사의 수업권을 보호하는 반면, 퀘벡의 규정은 학생들에게 교사와의 거리감을 의도적으로 형성하여 예의와 권위를 언어적으로 부여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교권이 단지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 환경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교사의 존엄과 권위를 보호하는 것이 곧 학생의 학습권과 안전권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도 오랫동안 학생인권조례와 교권보호법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해온 걸로 안다. 현재는 교원의 지시 불응, 수업 방해, 욕설, 폭행 등에 대해 교사가 학교장에게 징계를 요청할 수 있으며, 교원지위법에 따라 보호도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특징은 여전히 징계의 주체가 교사가 아닌 학교장이고, 법적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 어렵다. 2023년 이후 교권 침해 사례 급증으로 징계 기준을 강화시키자는 논의가 있으며, 학생인권과 교권 사이의 법적 균형을 지속적으로 조정 중이란 측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겠다.


드라마 〈서초동〉 5화는 픽션이지만,

한국의 현실의 교권 붕괴와 절차 무시의 문제를 강하게 환기시키는 점에서 칭찬한다.


완벽한 법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의 예의와 윤리를 적용하여, 함께 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라마 한 편 보고 이렇게나 길게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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