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갖는 글쓰기의 어려움
나이 들어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기억력과 인지력의 변화, 경험의 무게, 신체적 변화, 기술 환경의 낯섦, 사회적 역할의 변화 등 다방면의 요인들이 맞물리며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는 당연 체력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지만, 인지능력의 저하와 떨어지는 기억력이 글쓰기 어려움의 가장 큰 부분이다.
나는 현재 전업주부다. 가족들의 식사를 담당하고, 집안을 청소 정리하다 보면 가끔 머리에서 글감이 떠오르곤 한다.
오늘만 해도 그랬다.
새벽 6시 15분
딸아이의 출근시간이다.
도시락도 싸야 하고, 커피도 내려야 하고, 아침도 준비해야 한다.
아! 그런데 양파를 썰면서 영감님이 찾아오셨다.
하필 이때에
이 글감을 기억해야 하는데…
마음이 조급해진다.
양파를 볶으면서 글들이 저절로 자판을 두드리는 느낌이다.
안돼!
나의 손놀림이 빨라지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빨리 책상에 펼쳐진 종이에 마구 그적거린다.
생각이 달아나기 전에 영감님이 떠나기 전에 그 글감들을 잊지 않기 위해 종이 위에 휘갈겨 쓴 문자들은 형상문자 같다.
해석은 나중문제이다.
그렇게 바쁜 아침일과를 마치고 커피 한 잔과 함께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아침에 아무렇게나 써 놓은 메모지를 들여다보며 해석을 시도한다.
뭘 말하고 싶어 했던 거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것 글로 쓰면 참 재미있겠는데… 라며 계속해서 머리에서만 글을 써야 할 경우가 있다.
국거리 고기를 썰다가 생각나는 글귀가 있다고 책상으로 바로 달려가 컴퓨터를 열고 쓸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는 사이
벌써 머릿속의 글감은 언제 어디로 갔는지 없어진다.
글 쓰는데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했더니 아들이 일단 전화기에 음성 녹음을 해 놓고 시간이 있을 때 들으면서 다시 정리를 해 보라고 해서 시도를 해 보았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감성도 잊어버려 다시 시도하는 것이 어렵다.
왜 글 영감님은 마음먹고 글을 쓰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오지 않고,
화장실에 앉아서 근심을 내려놓은 순간에,
압력밥솥 공기 추가 탈탈탈 돌아가는 그때에,
전화벨이 울릴 때에,
초인종 소리가 들릴 때인가!!!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내가 무얼 꺼내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지 잊어버린다.
먹다 남은 찌개가 상하지 않게 한 번 더 끓여놓겠다는 심산으로 스토브 탑에 올려놓고 부엌을 나오는 순간 까맣게 타 버린 찌게 냄비를 마주하게 된다.
반대로 글을 쓴다고 앉아있으면, 밥때가 되어도 쓰던 글을 마무리한다는 분주한 마음에 밥솥을 얹어놓고도 불을 켜지 않은 게 태반이다.
이런 나의 건망증이 원망스럽다.
기억력과 인지능력의 변화뿐 아니라 신체적 변화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노화에 따라 시력, 손의 움직임, 집중력 등 신체적 능력이 저하되면 글쓰기도 자연히 힘들어진다.
작은 글씨나 오랜 시간 모니터를 보는 일이 피곤하게 느껴져, 글쓰기에 몰입하기 어려워진다. 돋보기를 다시 고쳐 써도 장시간 컴퓨터를 보고 있으면, 글자들이 작고 검은 점들로 변해 날아다니고, 시야는 안개가 낀 듯이 흐려진다.
손의 유연성도 감소하여 오랫동안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손글씨를 쓰는 것이 예전만큼 쉽지 않게 된다..
집중력 분산으로 인해 피로감이 쉽게 찾아오고, 한 가지 일에 오랜 시간 몰두하기 힘들어진다.
더불어, 일상생활의 변화(은퇴, 아이들의 독립, 건강 문제 등)로 인한 환경적 변화도 글쓰기에 영향을 미친다. 이전과는 다른 일상 리듬, 혼자만의 시간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어지는 등, 환경적 요인들이 창작의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겠다 싶다.
기술 변화와 세대 차이도 글쓰기 어려움 중에 하나이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글쓰기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젊은 세대는 스마트폰,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만, 200자 원고지나 노트에 글을 쓰던 나이 든 세대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워드 프로세서, 온라인 게시판, 블로그 등 새로운 플랫폼이 낯설어 글쓰기의 진입 장벽이 커지며, 타이핑 속도가 느려지거나, 저장 오류 등 미숙한 기기 사용에서 오는 불편함이 글쓰기의 집중력을 저해할 수 있다.
또, 글쓰기 양식의 변화로 짧고 간결한 SNS 글쓰기, 이모티콘이나 줄임말 등 새로운 소통 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평가에 대한 두려움 증가 또한 글을 쓰기는 어려움 중 하나였다. 나이가 들수록 실패나 비판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남들이 내 글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이걸 글이라고 썼냐고 비아냥거리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에 시도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 주제선정 또한 어렵다. 다양한 주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내 관심사가 다른 이들에게도 흥미로울지, 신선한 주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기표현의 필요성 감소하여 더 이상 남에게 나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내가 브런치에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비록 나이가 들수록 글쓰기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그만큼 글에 담기는 깊이와 진정성은 커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는 빠르고 화려한 글보다, 차분하고 깊이 있는 글이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처럼 나만의 속도와 색깔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되겠다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삶의 에피소드와 세월의 체험이 글 곳곳에 자연스럽게 배어들며, 젊은 시절에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통찰도 묻어나길 바란다.
나이 듦은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글쓰기를 마주해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완벽함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언어로 소소한 일상이나 감정을 기록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글쓰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 는속담이 있다.
나에게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이 속담에 맞는 것 같다. 늦게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세월의 깊이가 만들어내는 고유한 목소리를 글로 남길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두려움이나 부담보다는, 나만의 이야기를 천천히, 진정성 있게 풀어가는 용기를 가지고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