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넘어 세상밖으로

졸업하는 아들과 딸에게

by 수오

해마다 이맘때면 코끝을 스치는 매서운 바람에 유년의 기억이 살아난다. 필자가 자란 동네는 겨울이면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는 눈의 고장이었다. 동네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단단하게 뭉친 눈블록을 쌓아 올리며 만들던 '이글루(얼음집)'는 그 시절 최고의 아지트였다. 밖은 살을 에듯 추웠지만, 눈으로 만든 그 작은 집 안은 희한하게도 온기가 감돌았다. 작은 모닥불 하나에 의지해 군고구마를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들은, 차가운 겨울을 견디게 하는 가장 따스한 연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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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문턱에 선 아들과 딸들을 보며, 문득 그 시절의 얼음집을 떠올린다. 지난 12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너희가 머물렀던 학교는 바로 그 '이글루(얼음집)'였다. 세상의 거친 눈보라를 막아주고,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꿈꾸게 했던 보호막 말이다.


어떤 이들은 학교를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고 내신 성적을 산출하는 비정한 경쟁터로만 보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의 본질은 훨씬 깊고 풍부하다. 그곳은 인간이 세상을 배우는 첫 번째 사회이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급식실에서 나누던 시시콜콜한 농담, 시험이라는 공동의 전투를 치르며 쌓아 올린 전우애, 그리고 때로는 갈등하고 화해하며 익힌 소통의 기술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스펙'이 아니라, 너희의 내면을 단단하게 채운 인생의 소중한 경험치들이다.


이글루(얼음집)에 집밥 같은 화려함이나 가족의 무조건적인 안락함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곳엔 균형 잡힌 일상이 있었고, 길을 잃지 않게 붙잡아준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손길이 있었다. 무엇보다 같은 고민을 나누며 함께 성장한 친구들이 있었다. 학교라는 울타리는 너희가 온전히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비바람을 막아준 고마운 이글루(얼음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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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졸업과 동시에 너희는 그 익숙한 얼음집을 깨고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의 삶이 누군가 잘 닦아놓은 포장도로를 달리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길이 없는 곳을 가야 한다. 고등학교까지는 앞서간 나그네들의 발자국이 선명했고, 내비게이션처럼 친절한 가이드가 존재했다. 설령 오솔길이나 비포장도로를 만났을지언정, 그 역시 결국은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길 안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졸업장을 받고 학교를 떠나는 순간, 너희 앞에는 육지가 아닌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이제 너희는 학생이 아니라 '신입 항해사'다. 바다 위에는 차선도 없고 신호등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내비게이션도 없다. 태평양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듯한 막막함과 두려움이 엄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길이 없다는 것은, 네가 가는 모든 곳이 곧 길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생이라는 배의 방향타를 쥐는 권한은 이제 오롯이 너희의 몫이다. 부모나 선배들의 조언은 참고용일뿐, 최종 항로를 결정하고 뱃고동을 울리는 주체는 바로 너희 자신이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따르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나는 훈장과 같다.


배의 크기나 화려함에 연연하지 마라. 남들이 부러워하는 거대한 유람선이 아니어도 좋다. 조금 낡았더라도 비바람을 막아줄 수 있고, 너의 가치관에 적합한 배라면 충분하다. 때로는 거센 파도에 배가 흔들리고 고장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좌절하기보다는 스스로 배를 수리하고 다독이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끈기를 발휘하길 바란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흔들리지 않고 항해하는 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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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아.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이다. 울타리 밖의 세상이 무조건 춥고 매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곳에는 얼음집 안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장엄한 일출과 신비로운 지평선이 기다리고 있다.


두려움보다는 설렘을, 위축보다는 자신감을 가슴에 품어라. 거친 파도는 항해사를 힘들게 하지만, 동시에 가장 유능한 항해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너희의 첫 항해가 찬란하게 빛나길, 그리고 그 여정 끝에 각자의 아름다운 섬에 도착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얼음집을 넘어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너희의 용기 있는 발걸음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이 글은 다른 곳에 실린 필자의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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