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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오 Apr 29. 2023

나의 행복 단어 일지

코로나19가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백신 3차 접종, 자주 손 씻기, 마스크 착용, 모임 축소 등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혼자 지내는 것이 익숙한 사회성 결여자처럼 자체 격리를 하면서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재유행은 피하지 못했다. 약간의 열과 근육통으로 병원 검진을 받은 결과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격리 초반에는 크게 아프지 않아 간단한 스트레칭도 하고, 책도 읽고, 못 보던 드라마도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점 고열이 나고, 심한 근육통으로 휴식의 시간이 고통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인후통으로 병원 재진료까지 받게 되었다. 특히 목이 헌 탓에 침조차 삼킬 수 없었고, 약마저 먹을 수 없었다.


그래도 바나나 덕에 며칠을 버틸 수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족 3명이 함께 양성 판정을 받고 격리를 한 덕에 서로를 위로하며 고통과 외로움을 달랬다.


한편, 1주일의 시간에 고통의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몸이 잠깐 좋아질 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바로 내면의 나와 오롯이 소통할 수 있는 참 행복의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이 좋았던 이유는 감정 소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미없어도 있는 척, 싫어도 좋은 척, 할 말은 많지만 없는 척 등등 말이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온오프라인을 모두 끊은 고요의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


메건 헤이즈의 『행복을 부르는 지구 언어』에서는 삶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세상에 ‘행복’을 표현하는 50가지의 구체적 순간을 모은 책이 있다. 그중의 필자가 좋아하는 단어를 소개한다.


gökotta(예고타, 스웨덴어, 새벽에 자연으로 나가 첫 새소리를 듣는 것),

Waldeinsamkeit(바이트아인잠카이드, 독일어, 울창한 숲의 고요한 그늘에 홀로 있는 느낌),

mångata(몽가타, 스웨덴어, 물결 위로 길처럼 펼쳐지는 달빛),

sobremesa(소브레메사, 스페인어, 식사를 마친 뒤 식탁에 둘러앉아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

ayurnamat(아요르나맛, 이누이트어, 어쩔 수 없거나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일을 차분하게 받아들임), Solarfrí(솔라르프리, 아이슬란드어, 계획에 없었으나 날씨가 좋아서 쉬는 날),

petrichor(페트리커, 영어, 오랫동안 메마른 날씨가 이어지다가 비가 내릴 때의 향긋한 흙냄새),

cafuné(카푸네, 포르투갈어, 연인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사랑스럽게 빗어 내리는 행위),

naches(나헤스, 이디시어, 자식의 아주 작은 성취에도 부모가 느끼는 애정 어린 뿌듯함),

도르리(한국어, 여러 사람이 음식을 내어 함께 먹는 것),

라라(한국어, 즐겁고 흥겨운 삶),

라미(한국어, 동글동글 부드럽게 살다)


이 단어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행복의 구체적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언어학자 벤자민 리 워프는 “언어는 단지 우리의 생각을 주고받는 기계가 아니라 그 자체가 생각의 형성 틀(shape of ideas)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당신은 행복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추상적인, 덩어리진 ‘행복’이라는 질문에 무엇을 답해야 할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세상에는 80억 이상의 인구가 6,000여 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추상적, 덩어리진 단어 "행복"은 그 실체를 알기 어렵고, 사람마다 그 척도모두 다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행복의 순간’이 존재한다. 그 작은 순간과 기억이 모여 ‘행복’이 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느껴봤을 ‘행복의 순간’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크게 아프지 않은 코로나 ‘덕’에 드라마도 보고, 책도 읽고, 침대에 널브러져 이래라저래라 어리광도 피워 보고, 아요르나맛' 한 상황에서 가족들과 '소브레메사' 하면서 ‘라라’의 순간을 함께 하니 '행복'이라는 실체 없는 녀석에게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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