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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의 잡학다식 Jun 17. 2023

남을 돕는다는 것은

- <줬으면 그만이지> (김주완 지음, 도서출판 피플파워)

 새해 들어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화제가 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한 지역방송이 제작해 방영한 이 프로그램은 1월 초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여러 신문과 미디어에서 이 작품을 언급하였고, 급기야 설 명절 다시 편성돼 전국에 방송됐습니다. <어른 김장하> 1, 2부입니다. (연출 김현지, 제작 MBC 경남)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1944년 생, 곧 팔순을 맞습니다. 허리가 굽어 종종걸음으로 걷는 노년의 신사.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열여섯 살, 한약방에 점원으로 취직했습니다. 주경야독 3년 만에 한약종상 시험에 합격하고, 스무 살 되던 1963년, 고향 경남 사천에 한약방을 열었습니다. 병원, 약국이 없는 ‘무의촌, 무약촌’을 위해 국가에서 한약을 조제, 판매할 수 있는 면허를 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좋은 약재를 쓰고, 싼값에 약을 지어주는 젊은 한약사는 진주, 사천, 삼천포는 물론, 멀리 남해까지 소문이 자자했고, 곧 꽤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장하는 젊은 시절부터 가난한 학생들을 돕기 시작했는데, 마흔이 넘어서 진주에 고등학교를 세웠습니다. 1991년, 학교 운영이 자리를 잡자 당시 자산 가치 100억 원이 넘은 이 학교를 국가에 헌납했습니다. 그의 장학사업은 전폭적이고, 지속적이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등록금, 하숙비, 생활비까지 지원해서 아무 걱정 없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심지어 재수 학원비, 대학교, 대학원 학비까지 계속해서 지원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지역의 대학, 신문, 극단, 여성운동, 환경운동, 시민단체에 직접 참여하거나 재정 후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수백억 원 재산을 일군 이 사나이는 평생 자가용 승용차를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먼 곳은 버스, 택시를 탑니다. 집과 옷차림, 일하는 공간까지 검소한 모습입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독지가의 자선, 기부, 선행 미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누구에게 얼마를, 언제, 어떻게 지원했는지 일절 밝히지 않고, 설령 시민단체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다 하더라도 결코 자신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언론, 미디어 사이에서 그는 인터뷰하지 않고, 취재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어른 김장하>는 2022년 5월, 그가 평생 일해온 한약방 문을 닫고 은퇴를 결정하자 언론인 김주완이 그의 삶을 추척, 취재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 기록입니다. 이번에도 정식 허락을 받은 촬영은 아니었습니다. 김장하는 자신의 선행을 묻는 질문에 여전히 입을 굳게 닫았습니다. 취재진은 대법원 판사, 유명 대학 교수부터 평범한 회사원, 동네 음식점 주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의 조각조각을 모아 엮어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성공한 부자의 자선 스토리에 그쳤다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을 겁니다. 아니, 진짜 이런 사람이 있다고?

 김장하의 삶은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는 것, 사람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자세와 태도여야 하는가를 낮은 목소리로 보여주었습니다. 단행본 <줬으면 그만이지>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과 김장하 선생의 삶, 철학이 잘 담겨 있습니다.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기에 내 자신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1991년 진주 명신고 이사장 퇴임사, <줬으면 그만이지> 105쪽)


  TV 다큐멘터리와 책을 모두 보고 나서 유명한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3~4)

  김장하 선생이 크리스천인지 혹은 이 말씀을 알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의 선행이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닌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늘 우리 곁에 선한 사마리아인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여러 질문과 도전을 던지는 책과 영상입니다.


- 2023년 2월, 큰나무교회 가정예배서 '오순도순 한마음 - 책 읽는 크리스천'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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