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France
나는 왜 에펠탑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 읽은 여행책에는 유럽에 대한 내용도 없었고, 에펠탑 자체가 입이 쩍 벌어지는 미칠듯한 광경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막연하게 에펠탑을 꿈꿔왔다. 에펠탑 사진만 보면 가슴이 뛰었고, 내 휴대폰 배경화면은 언제나 에펠탑 사진이었다. 나는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에펠탑을 그려왔다.
내가 조금 멀리 여행을 갈 돈이 생기고, 조금 오래 여행을 갈 시간이 생기고 나니 여행지를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잠시 인도나 남미에 대한 고민을 했었지만, 결국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러 나오는 곳은 파리였고 에펠탑이었다.
그렇게 21살 여름,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비행기를 탔다. 나에겐 첫 장거리 비행이었고, 환승도 처음 해봤다. 이코노미 좌석이 그렇게 불편한지도 처음 깨달았다. 하지만 내 학창 시절 여행에 대한 원대한 꿈을 담고 있었기에 불편한 줄도 몰랐다. 오히려 비행기 안에서의 그 시간마저 여행의 일부라 생각하니 모든 게 새롭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왜 이렇게 과장하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오래도록 꿈꿔온 여행지에 다가가는 그 시간은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즐겁고 행복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낯선 대륙, 낯선 나라에 처음 도착한 시간은 이른 아침이었다. 비행기에서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잤고, 시차도 7시간이나 났기 때문에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파리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그 피로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한 시라도 빨리 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에 몸의 피로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버스에서 내린 곳은 개선문 바로 앞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개선문은 내가 파리에 왔음을 몸소 실감 나게 해 주었다. 배가 고파 뭐라도 먹으려고 찾은 곳은 어디서나 그나마 믿을 수 있는 맥도널드. 주문을 하면서 카드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시스템에 놀라고, 너무할 정도로 작았던 빅맥의 크기에 두 번 놀랐다. 우리나라랑 다르게 지하철에는 아무런 상점도 없었고, 화장실도 없었다. 그리고 지하철 광고판은 종이를 끼워 넣는 아날로그 방식이었으며, 스크린 도어는 당연히 없었다. 그나마 있는 자판기가 전부인 곳에서, 지하철 문은 자동이 아니어서 직접 열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 탄 지하철에서 본 것은 두 청년이 시끄러운 노래를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광경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전혀 필요도 없는 물건을 잔뜩 들고 와서 파는 사람들은 양반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들은 노래가 끝이 나고, 지하철에 탄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였다면 모두가 거부했을 법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돈을 주는 기이한 풍경.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서서히 다가올 무렵, 다행히 내가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고 그들과 시선을 마주하지 않을 수 있었다.
파리 외곽의 깔끔한 호스텔에 짐을 풀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피로할지라도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탄 지하철에서 다시 마주한 사람은 트럼펫 연주를 하는 할아버지. 그래도 아까보다는 듣기도 좋고, 다행히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시 내린 곳도 개선문. 개선문에 올라가서 야경을 보고 싶어 저녁에 올라가기로 하고,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시내를 걸었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습하지 않아 기분이 좋아지는 더위를 즐기며 명품 가게 사이를 걸었다. 곳곳에 보이는 프랑스 국기와 명품 브랜드들. 그리고 파리 생제르맹 유니폼을 곳곳에 팔고 있는 스포츠 용품점들. 카페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있는 파리 시민들 그리고 작은 에스프레소 잔 하나를 서빙하는 웨이터들.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니 모습을 드러낸 크고 작은 공원에 너무도 편한 복장으로 삼삼오오 모여 피크닉을 즐기는 젊은이들. 상상만 해오던 유럽과 프랑스의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절로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센 강이 보이면서 그 너머로 에펠탑이 보인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에펠탑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내 눈앞에 가까이 담아내고 싶었지만, 일정 상 내일로 미뤘다. 조금 더 기대를 하면, 감동이 조금 더 커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