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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레오네 Aug 14. 2020

파리의 그림자

몽마르뜨 언덕

 그리 이른 아침은 아니지만, 느낌은 이른 아침인 듯 약간은 쌀쌀한 날씨 속에 숙소를 나선다. 여행지에서 바삐 움직이며 많은 곳을 가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길지 않은 여정이라도 매일 그런 일정이 반복된다면 피로가 쌓여 결국 여행의 흥미는 떨어지게 되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없다. 여행 일정을 여유 있게 잡아야 하는 이유이며, 적당한 휴식이 필요한 이유이다. 아침 일찍 나온 이유에 대해 말하려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아무튼 - 아침도 거른 채(사실 조식이 너무 비싸서 안 먹은 거지만),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한다. 


몽마르뜨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목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하는 언덕길 양 옆으로 오래된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세상에 모든 에펠탑 관련 기념품은 거기서 다 본 듯하다. 몽마르뜨 공원에서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가는 길이 양 옆으로 둥글게 이어져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있었는데, 가이드가 관광객들 대상으로 주의를 준다.

"여기 팔찌를 채워서 돈을 받아내는 장사꾼들이 많아요. 눈길조차 주지 마세요. 불법인 것 같아도 나라에서 다 허가를 받고......."

마지막 말이 확실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물론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조심하라는 것이 요점이니까.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흑인 일행들이 올라가는 길목을 막다시피 하며 줄지어 서있다. 설마 내쪽으로 오는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설마가 사람 아주 제대로 잡았다. 그들은 나를 둘러싸더니, 내 팔을 잡고서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라면서 다른 쪽에서 내 팔에 팔찌를 채운다. 1분 전에 들었던 가이드의 말이 현실로 다가와버렸다. 딱 봐도 3분 만에 만든 것 같은 퀄리티의 실팔찌를 채운 뒤, 어림잡아 5유로는 받아내는 듯했다.


 "이봐, 여기 옆에 백인 친구들도 팔찌를 찼잖아. 선물이라니까?" 라면서 옆에서 멍청한 표정으로 서있는 백인 남자아이를 보여준다. 가방을 뒤지는 듯 한 백인 소년은 돈을 꺼내고 있겠지. 실팔찌가 내 손목을 한 바퀴 돌아 감길 때 즘 억지로 그들의 파을 뿌리치고 팔찌를 풀어냈다. " NO NO NO NO Thanks."를 여러 번 외친 뒤에야 겨우 그들의 곁을 떠날 수 있었다. 처음 겪어본 일인지라 당황스러운 마음에 긴장을 해서 가슴이 쿵쿵 뛰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나를 해칠 수 있겠냐지만, 실제로 겪으니 당시에는 굉장히 무서웠다. 다른 여행객들에게 물어보니, 나를 제외하고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은 굉장히 드물었다. 운이 좋지 않아 걸려버렸지만, 썩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술술 잘 풀리고, 아름답기만 한 것이 여행은 아니니까.




성 사크레쾨르 성당


 몽마르뜨 언덕은 파리 시내를 고즈넉이 바라보기에 아주 좋은 공간이었다. 언덕에는 자주 버스킹을 하는 듯했고, 그날도 어느 할아버지가 하프를 켜고 계셨다. 낮에 왔지만, 밤에 오면 야경이 아주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몽마르뜨 뒤쪽 골목에도 상점이 즐비하다. 크루아상을 파는 작고 아담한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 아침도 거른 채 허기가 져서 갓 구운 따끈따끈한 크루아상과 오렌지 주스로 배를 채운다. 가격이 비싸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몽마르뜨에서 아침으로 크루아상을 맛보았다는 점. 그 느낌을 느낀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듯했다. 이런 즉흥적인 발견에, 순간적인 선택에, 의도치 않은 이벤트에 배낭여행의 의미는 깊어진다.


몽마르뜨 언덕 뒤편에서의 크루와상




몽마르뜨에서 내려가다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사랑해 벽'이 나온다. SNS에서 자주 본 관광지이다. 실제로 나도 그 벽에 대해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처음 그곳을 찾아갔을 때, 한 번에 찾지는 못했다. 나는 그 벽이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거리의 아주 큰 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니 아주 작은 공원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벽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크기도 생각보다 크진 않았다. 벽 자체는 코발트 블루인 것이 굉장히 아름다웠고, 한국어로 적힌 문장도 3개나 찾을 수 있어서 뿌듯했지만, 내가 사진 속 일부만 보고 전체를 기대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객들은 관광지의 이미지를 보고 저마다 나름의 기대를 품고 떠난다. 그렇지 않고서야 관광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실제로 맞이한 관광지는 기대보다 더 깊은 감명을 주기도 하지만, 내가 보았던 '사랑해 벽'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충분히 자료를 찾아보고, 충분히 생각을 해 본 다음, 기대를 최대한 낮춰보고 가볼 것을 추천한다. 여행에서 항상 행복한 일만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그 어떤 무섭고 짜증 나고 힘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진정한 여행자라면 그런 돌발 상황을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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