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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레오네 Aug 12. 2020

파리의 일상

오페라 가르니에

 버스킹이 참 많은 나라다.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에는 공통적으로 버스킹이 참 많다. 그들이 노래를 아주 못하는 게 아니었기에,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길을 걷다 지치거나 쉬고 싶을 때, 아주 좋은 변명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 쉬는 순간마저도 아름답게 바꿔주는 마법과 같은 문화.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서 라틴계열의 청년이 홀로 버스킹을 하고 있다. 더운 날씨에 점심을 먹기 전, 오페라 가르니에 계단에 앉아서 그의 버스킹을 감상했다. 아는 노래를 많이 불러줘서 특히나 기억에 남았는데, 노래를 잘 부르기도 했지만 관객과 함께 노래를 하려는 모습이 특히나 인상 깊었다. 

"얘야, 이리와봐. 너도 노래 한 번 해봐"

버스킹 청년은 내 옆에 앉아서 같이 버스킹을 감상하던 어린아이들을 무대로 불러내었다. 아이는 처음에 망설이는 듯했지만, 옆에 있던 어머니가 가보라는 듯한 시늉을 하자 금세 무대로 나섰다. 이런 말에 별다른 고민 없이 무대로 나서 노래를 한다면 그것도 재능이겠지. 작은 목소리로 수줍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버스킹을 하던 청년도 옆에서 기타를 쳐주며 도와주었고, 바라보던 관객들은 그 광경에 미소를 자아냈다.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서의 버스킹

 

 오페라 가르니에 앞을 가로지르는 교차로와 그 위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자동차들, 시티 투어 버스, 구름 낀 선선한 하늘, 그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멋진 오페라 건물을 배경으로 하던 그 기억은 청년의 노랫소리와 함께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청년에게 동전을 주고 자리를 뜨려 하자, 청년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어디서 왔니, 차이나?"

"코리아"

그러자 청년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즉석에서 아리랑과 강남 스타일을 한 소절씩 부른다. 거기에 놀란 내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자 청년이 나에게 같이 버스킹 해보겠냐고 제의를 한다.

"여기서 한국 노래 한 곡 뽑고 가"

아주 괜찮은 제안임이 분명했지만, 그 당시에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

"괜찮아. 난 지금 가봐야 해. 내일 다시 오면 그때 같이 할게"

"저런...... 난 내일 여기 안 올 수도 있어"

내가 애써 거절했지만, 청년은 아쉬운 듯한 표정을 내비쳤다. 


 돌이켜보니 나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노래 부르는 것에 취미가 없던 내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파리 한복판에서 버스킹을 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을 놓친 건 아닐까.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서 완벽한 장비를 갖춘 상태에서 관객도 모아져있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프랑스는 요리와 음식으로 유명하다. 나도 프랑스에 오면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에스카르고와 푸아그라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어릴 적부터 자주 들어보던 음식이었고, 달팽이와 거위 간으로 만든다는 요리의 맛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급 요리였기에, 배낭 여행자에게 부담이 되는 금액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파리에서 간단한 음식으로 때우며 식비를 아꼈고,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음식점은 비쌀 거라 생각했기에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따로 찾아보지 않으니, 식당을 찾아다녀야 했고 다행히 유럽에는 식당 바깥에 메뉴판이 있어서 가격대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오페라 가르니에 골목 사이로 들어가 식당을 찾아보았다.


 어느 휴고보스 매장 건너편 카페를 찾았다. 에스카르고와 푸아그라 모두 팔고 있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물론, 음식의 질이 그렇게 좋지는 못하겠지만, 맛을 본다는 게 어딘가-라는 생각이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에스카르고, 푸아그라 그리고 디저트로는 오늘의 디저트를 시켰다. 어떤 게 나올지 몰라서 랜덤 박스를 열어보는 기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시켰다. 


 푸아그라는 소라 질감에 다슬기 맛과 매우 흡사했다. 특별한 맛은 없었는데, 우리나라 횟집에서 소라를 손으로 들고 이쑤시개로 빼먹는 것과 달리, 달팽이를 집고 빼는 식사 도구가 따로 존재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이 나라에서는 달팽이가 고급 요리이고, 그에 맞는 도구가 있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아그라는 2가지 종류가 나왔는데, 하나는 그대로 구운 것이었고, 하나는 크림이랑 계란과 함께 갈아서 만든 것이었다. 처음에는 뭐가 푸아그라를 말하는지 모르고 먹었는데, 역시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냥 구운 푸아그라는 닭똥집 질감 같기도 하고 고소하고 맛이 좋았다. 하지만 갈아 만든 푸아그라는 색깔도 치즈 색인데, 부드럽게 썰리는 것까지는 좋았고, 식감은 굉장히 별로였다. 굉장히 기름진 맛이고, 묽어서 씹는 맛도 좋지 않았다. 구운 푸아그라는 다시 먹고 싶은 맛이었지만, 갈아 만든 푸아그라는 다신 먹고 싶지 않은 맛임이 분명했다. 원래 2가지 종류를 모두 내어주는지는 (내가 한 번만 먹어봐서) 모르겠지만, 다행히 2가지 종류를 다 먹어본 덕분에, 푸아그라에 종류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호불호도 확실히 가릴 수 있었다.


에스카르고


 와인과 곁들여 에스카르고와 푸아그라를 열심히 먹고는, 오늘의 디저트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온 메뉴는 치즈 모둠. 부드럽지 않고 굳은 갖가지 치즈가 보기 좋게 나왔다. 평소 치즈를 녹여서만 먹어본 나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시킨 거니 한 입 먹어보지만, 아무래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냄새도 이상했고, 맛도 좋지 않았다. 결국 남은 빵으로 배를 좀 더 채울 뿐이었다.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한 친구들의 애플 타르트와 아이스크림만 한 입 뺏아먹을 뿐이었다. 진짜 오늘의 메뉴가 치즈 모둠이었는지, 아니면 사장님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치즈 모둠을 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당황스러운 이벤트였고, 덕분에 아직도 기억에 남는 디저트가 되었다.


 파리 골목 식당에서 운이 좋게 에스카르고와 푸아그라를 맛보게 되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식당에서도 한 번 더 먹어봤으면 좀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도 남긴 한다.



 파리의 일상은 이러했다. 길을 걷다 보면 버스킹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노천카페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대로 그게 여행지의 분위기가 되어 다가온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고, 원하는 식당에서 원하는 메뉴를 먹을 수 있고, 길을 가다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발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감상할 수도 있다. 배낭여행의 묘미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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