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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레오네 Aug 15. 2020

개선문 삼고초려

Paris, France

파리에는 고층 빌딩이 없다. 파리의 야경을 눈에 담기 좋은 곳이 많지가 않았다.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 개선문 위라고 생각했다. 몽파르나스 타워도 있었지만, 개선문 위에 서면 보이는 12 갈래의 길과 샹젤리제 거리를 함께 눈에 담고 싶었다.


개선문으로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개선문에 오르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첫 번째는 단순히 시간 때문이었다. 야경을 보기 위해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일부러 늦은 시간에 개선문에 오르기 위해 지하 통로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미 개선문으로 통하는 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입장 마감 시간을 생각하지 못하고 섣불리 찾은 결과였다. 나의 개선문 오르기 첫 시도는 허무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두 번째는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개선문 옆 지하철에서 내리니 파리의 하늘이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그때부터 좋지 않은 예감이 주변을 감싸 안았다. 어렵사리 개선문으로 향하는 통로를 걸쳐 빙글빙글 이어진 계단을 따라 열심히 올라간다. 


개선문을 오르는 계단


달팽이 계단을 쉼 없이 올라가고 나니 그때부터 다음 계단으로 이어지는 길을 직원이 막고 있다. 왜냐는 물음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입장이 제한된다고 말을 한다. 언제 올라갈 수 있냐고 물어보자 비가 잠잠해지면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대답뿐.


 어쩔 수 없이 계단에 앉아서 기다린다. 하지만 개선문 벽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얼핏 보아도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함께 줄을 서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나가고, 결국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직원에게 내일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긴 뒤 숙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고, 여행은 언제나 이런 변수와 함께한다.




 그리고 내가 개선문을 올라가게 된 것은 세 번의 시도 끝이었다. 다행히 오늘은 날씨도 좋았고, 아직 해가 질 시간도 아니었다. 이미 두 번의 실패를 겪은 뒤여서 그랬을까, 이번에는 꼭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다시 달팽이 계단을 열심히 올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느 누구의 저지도 없이 개선문 계단을 올라 파리의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개선문 위에는 각 국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포토존에서 줄을 서며 만난 브라질 쌍둥이 분, 에펠탑을 바라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눈 콜롬비아 청년, 나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신 미국 노부부(이들은 평창 올림픽을 보러 한국을 찾는다고 했다)까지 정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개선문에서 바라본, 라 데팡스 뒤로 지는 노을


프랑스의 라 데팡스 뒤로 해가 지고 있었고, 겨우 남은 빛으로 파리 시내를 비추고 있었다. 샹젤리제 거리는 빛이 나기 시작했고,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갈래의 길에도 서서히 불이 켜지고 있었다. 그리고 열심히 에펠탑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더니 에펠탑이 별빛으로 반짝였다. 매 정각마다 시작되는 에펠탑의 별빛 쇼였다. 다들 비슷한 키를 가진 파리 건물들 사이에 홀로 우뚝 솟은 에펠탑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해가 지고 나니, 영화 '라따뚜이'에서 보던 파리의 야경이 펼쳐졌다. 실제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아주 멋진 풍경임이 틀림없었다.


삼각대가 없으면 이렇게 됩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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