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밀라노
여행지에서 숙소를 정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배낭 여행자들이라면 대부분 호스텔이나 에어비앤비를 선택할 것이다. 숙소가 어떻냐에 따라 그 도시에 대한 평가가 좌우될 만큼 여행자들은 숙소를 선택할 때, 비용, 위치, 분위기, 시설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게 되고 신중할 수밖에 없다. 여행의 많은 시간을 숙소에서 보내게 될뿐더러, 휴식을 충분히 취할 수 있어야 여행도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내가 찾은 호스텔들이 여럿 되었지만, 그중 이탈리아에서 묶은 두 도시의 숙소 분위기는 매우 활기찼다. 피렌체의 숙소는 굉장히 큰 건물을 사용 중이었고, 나는 캐나다 친구 둘과 함께 방을 썼다. 수영장이 딸린 큰 숙소였는데, 수영장과 함께 식당과 바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수영장도 꽤나 넓었는데 수영복이 없는 나는 근처 비치배드에 누워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여행을 갈 때, 수영복을 챙겨가면 꽤나 유용하게 쓰일 때가 온 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해가 지니 호스텔은 파티장으로 변했다. 칵테일 바는 사람으로 북적였고, 싸지 않은 값이었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질 않았다. 소소하게 작은 잔에 마시는 나와 반대로 서양 친구들은 버스킷에 얼음을 가득 담아 칵테일을 들고 다니며 마셨다. 더운 날씨 속에 누군가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고 누군가는 삼삼오오 모여 칵테일을 마셨고 누군가는 시끌벅적한 노래 사이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그저 테이블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들과 함께 칵테일을 홀짝이며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들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실내에는 노랫소리가 커져갔고, 분위기는 마치 클럽과도 같았다. 무척이나 재미있어 보였지만 나는 그들 사이에 낄 수 없었다. 나의 유창하지 못한 영어로는 함께 어울리기가 힘들 것 같았다. 여행을 하면서 외국인들과 대화를 자주 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했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음악 소리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뿐더러, 농담을 주고받기엔 내 영어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을 부대끼며 노는 그들 사이에서 어떤 여자의 가슴팍이 쓰인 'SLUT' 이란 단어를 아직도 기억하며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속소에서 잘 준비를 하고 있자니 캐나다 친구들도 숙소로 돌아온다. 술이 잔뜩 취해서 입꼬리가 귀에 걸려서 말이다.
"어때 한국 친구들 잘 놀고 왔어"
"예쁜 여자들 엄청 많더라고~ 너무 재밌었어. 하하"
그들은 그들끼리 술기운에 묻고 답하면서 결국 코를 엄청 골며 우리의 잠을 깨웠다.
밀라노 중앙역 근처에 있는 호스텔은 나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피렌체처럼 클럽의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곳도 매일 저녁마다 다른 파티를 열고 있었다. 파티와 함께 그곳에도 역시 바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 비싸지 않은 칵테일과 맥주는 내 취향과 아주 잘 맞았다. 그곳의 파티 종류는 각양각색이었는데, 내가 기회가 되어 참여한 파티는 바로 가라오케 파티 즉, 노래방 파티였다. 여행의 마지막 밤인 만큼 끝까지 제대로 놀다 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을 굳이 숨기진 않겠다.
가라오케 파티는 유튜브로 노래 가사만 띄워준 다음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며 파티를 즐기고, 노래를 부른 사람에게는 고급 양주를 한 잔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인 여성분도 앞에 나가서 발라드 노래를 부르셨고, 남미 여행객들도 스페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자기만 아는 노래를 부르는 것보단 남들이 모두 잘 아는 비틀즈의 노래나 오아시스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당연 호응은 더 좋았다. 나도 내가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며 즐기곤 했으니까.
나는 세르비아에서 온 두 여성 여행객들과 함께 있었는데, 한 여성분의 반삭을 한 머리 스타일이 너무 매력적으로 보여 말을 걸게 된 것이 계기가 된 것이었다. 한창 얘기를 하다가 그들이 'Rakya'라는 이름의 보드카를 꺼내서 먹는 것을 보고는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그들은 우리에게 작은 보드카 하나씩을 선물로 주었다. 그들은 추운 지방이라 보드카를 항상 가지고 다니며, 여행을 올 때도 작은 보드카 수십 병을 가지고 다닌다면서 하나 정도는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역시 새로운 문화였다. 나도 그 답례로 한국에서 가져온 하회탈 목걸이를 선물로 줬다. 누군가에게 줄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챙겨 온 것이지만, 여태 줄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배낭에 묶어놓던 것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줄 사람이 생기니 다행이었다.
파티에서 시간이 지나자 나는 파리에서 버스킹 기회를 거절한 기억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 당시 거절한 것이 마음속에 괜스레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한 번 나가볼까?"
친구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쉽게 도전하기 꺼려하는 눈치였다. 나도 덩달아 망설이고 있었는데, 그런 우리를 보며 세르비아 친구가 말을 건넸다.
"한 번 나가봐~모두가 너네를 좋아할 거야. 강남스타일은 모두가 다 아는 노래잖아!! 빨리 나가봐. 그리고 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해. 나는 유럽 마지막 밤에 밀라노에서 최고의 밤을 보냈다고"
그 말을 들은 나와 친구는 없던 용기가 바로 생겨서 노래가 끝나자마자 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설 수 있는 조금의 용기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나와 친구가 강남스타일을 신청하자 사회자의 반응도 좋았고, 반주가 흘러나오자 모두가 환호해주었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강남스타일만큼 신이 나는 노래가 이전에 없었기도 했지만, 모두가 아는 노래인 것이 그들의 환호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그전까지 외국에서 유명하다고는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로 모두가 잘 알고 따라 부를 정도의 유명세를 탄 줄은 몰랐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도 강남스타일을 한국인이 부르는 것이 신기했던 것일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의 무대를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부끄러움도 잠시, 나와 친구는 열심히 노래를 불렀고 노래가 끝나자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앞에 앉은 여행객들은 우리에게 하이파이브를 자청했고, 결국 나는 세르비아 친구의 말 한마디 덕분에 실제로 잊지 못할 추억을 밀라노에서 남기고 왔다.
밀라노에서 즐길거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두오모를 구경하고, 산 시로 스타디움 투어도 다녀왔지만, 언제까지나 나의 머릿속에는 밀라노 호스텔에서의 가라오케 무대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언젠간 세르비아에 놀러 오라던 친구의 말 한마디 덕분에 좋은 기억을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Thanks, Me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