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이탈리아
피렌체 가기 전에 '냉정과 열정 사이' 꼭 보고 가세요~
내가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숱이 들은 말 중 하나이다. 무언가 다들 그렇다니까 나도 보고 가야만 할 것 같은 느낌. 그렇게 나는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급하게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명작 영화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차이는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숙소에 짐을 풀고 두오모를 보려 버스를 기다린다. 근데 정류장을 잘못 잡은 탓일까, 버스가 몇십 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미국에서 오신 흑인 할머니 두 분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너네도 버스 기다려?"
"네, 근데 20분이 되도록 안 오네요."
그렇게 같이 10여분을 더 기다리다가 결국 할머니께서
"그럼 우리 택시 탈까?" 라며 서로 대화를 하신다. 그러더니 곧장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타신다. 부러운 마음도 잠시,
"이봐, 너네도 빨리 타!"
태워주시는 건가? 싶은 마음에 솔깃했지만, 애써 거절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우리는 돈을 아껴야 해서 버스 타고 갈게요."
"아니야. 돈은 우리가 낼게 빨리 타"
쿨하신 할머니들이셨다. 우리는 미소를 머금고 택시를 탄다.
유럽에서 택시는 우리나라보다 가격이 비싸기도 했고, 그래서 택시는 절대 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여행은 예상치 못한 사건의 연속이지 않은가. 날도 덥고, 기다리기 지친 와중에 반가운 제안이셨다. 피렌체 골목골목을 지나간다. 우리도 이 상황이 신기한데, 할머니들도 재밌으셨는지 웃으면서 말하신다.
"늙은 흑인 여자 둘이 젊은 남자 둘을 납치하네. 하하"
"두오모 돔을 보려면 두오모에 올라가면 안 되지"
에펠탑을 보려면 에펠탑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연장선이다. 사실 두오모를 미리 예약하지 못해서 못 가게 된 것의 합리화이기도 하다. 조토의 종탑도 오르기가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빙글빙글 올라가는 와중에 벽에 기대고 쉬는 사람도 보인다. 한 번에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쉬지 않고 가본다. 뜨거운 햇볕 아래 피렌체 도시 전경이 보이고, 커다란 두오모 돔도 눈에 들어온다. 아쉬운 점은 철조망이 있어 탁 트인 감상이 어렵다는 점 그리고 사진 찍어도 이쁘게 안 나온다는 점. 두오모 돔은 건축미를 한껏 뽐내고 있다. 건물이 이쁘면, 도시도 이뻐지는 것일까.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가는 길에 작은 광장에 앉아 버스킹을 듣는다. 유럽의 매력 중 하나인 버스킹은 언제나 도시를 꾸며준다. 친구와 앉아서 노래를 듣고 있는데, 코가 말썽이다. 코피가 자주 터지곤 했는데, 마침 그때 터져버린 것이다. 휴지를 챙기지 않아 곤란하던 찰나, 우리 바로 앞에서 같이 버스킹을 감상하던 한국인 커플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물티슈를 건네준다.
"감사합니다..."
베키오 다리를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한다. 노을이 지기 전 한 시간, 매직 아워에 딱 맞춰 도착했다. 무슨 축제를 하는 건지, 원래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공연도 하고 농구 대회도 열리는 듯하다.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 홀로 우두커니 서있는 미켈란젤로는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맥주를 하나 사서 계단에 앉아 야경을 구경하다가 친구가 땅에 놓은 맥주병을 쏟아버린다. 때마침 바로 앞에 있던 한국 여행객이 또다시 휴지를 건네준다. 여행을 떠나 왔는데, 어딜 가나 한국인이 있는 웃긴 상황.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런 상황은 신기하기만 하다.
화려한 야경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또한 아름다웠다. 도시 자체 인프라가 그렇게 잘 되어 있진 않았지만, 도시 자체가 아름답게 보였다. 밤이 되고 붉은 조명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피렌체의 도로는 모두 반들반들한 돌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이 밤이 되고 조명이 켜지자 빛이 반사되어 더욱 고풍스러운 느낌이 났다. 숙소로 가는 길에서 그림을 파는 할아버지를 만난다. 모두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하는 할아버지의 그림은 정말 전문가와 같다. 손바닥 크기의 그림부터 전지 크기의 그림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베키오 다리, 두오모, 피렌체의 야경 등 그린 대상도 다양하다. 30유로에 판다는 작은 그림을 너무 사고 싶지만, 예상치 못한 지출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게다가 이걸 한국까지 구겨지지 않게 잘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품게 되면서 아쉽지만 포기하고 만다. 언젠가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도 누군가가 이런 그림을 팔고 있다면, 그땐 꼭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피렌체에는 이탈리아 랜드마크가 있기도 하지만, 도시를 가득 매운 아름다운 건축물들 그리고 역사 속에 깊게 배인 듯한 각양각색의 풍경들이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끄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