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여행지가 어디세요?
꼴레오네의 수필집 #012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특히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으로 취급되다 보면
으레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인생 여행지가 어디세요?"
어느 순간부터 SNS를 포함한 사람들 사이에서 인생 여행지를 너무 남발하게 되면서, 세상에 인생 여행지는 너무 많아지게 되었다. 실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 여행지는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저마다의 인생 여행지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러니 100명에게 물어보면 100개의 인생 여행지가 나오게 된다.
사실 나는 이런 "인생 무언가"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지뿐만 아니라 인생 맛집, 인생 영화, 인생 책 등등 모든 종류가 다양한 경험에는 인생이란 단어를 붙여 그 경험을 강조하는 행태가 남발되고 있다.
그러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부작용 중 하나는 마치 나도 그 경험이 좋아야 할 것 같다는 강박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도 그 경험을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 경험을 통해 싫은 소리를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마케팅에서 적극 활용되곤 하지만, 그다지 좋은 행태로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생여행지가 어디냐고 한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굉장히 곤란한 감정을 느끼면서 많은 고민을 순간적으로 하게 되는데,
내가 나의 여행에서 경험한 개인적인 감정이 그 사람에겐 분명 다르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나 책은 시간이 흘러도 내용에 변함이 없지만, 여행이라 함은 시간에 따라 여러 가지 환경요인이 달라지게 된다.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거나, 해당 국가의 정책이 달라지거나, 혹은 입장이 통제되기도 하는 등 같은 사람이 두 번째 방문했을 때조차 그 경험이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굉장히 멀리 떠났거나 돈을 많이 썼거나 희소성이 있는 등의 '있어 보이는' 답변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답은 해야 하니, 나는 보통 우유니 소금사막을 말하곤 한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여행지이기도 하고, 내가 가 본 곳 중에서 가장 멀리 떠난 여행지이기도 하면서, 실제로 내가 고등학생부터 줄곧 꿈꿔온 여행지중 하나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가치가 큰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굳이 나만의 좋은 경험이 담긴 여행지를 꼽자면, 우유니 소금사막이 아닐지도 모른다. 왕복 8시간이 걸리는 아르헨티나 피츠로이 트레킹과 정상에서 바라본 붉게 물든 피츠로이 봉우리의 모습이 나에겐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인 경험이기도 하기에, 피츠로이라고 대답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면 여러 부가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피츠로이가 어디에 있는 무엇인지도 설명해야 하고, 떠오르는 태양에 비추어진 피츠로이 봉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줘야 하며, 그곳에 오르기가 얼마나 힘들고, 그곳의 날씨가 정말 좋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름 때문에 봉우리조차 보지 못한다는 사실까지 말하려면, 부가적인 설명이 너무 길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로서는 우유니 소금사막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좀 더 편하게 질문을 받아넘길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되었던 것이다.
비슷하게 누군가가 여행을 다녀오면 어땠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이런 질문을 던지면 백이면 백 좋다고 답변할게 뻔하다. 자기가 다녀온 여행이 좋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실제로 본인의 시간과 돈을 쏟아 떠난 여행에서 만족하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어떻게 해서든 그 시간과 돈에 대한 보상심리로 합리화하여 좋은 기억으로 포장하여 돌아오기 때문이다.
내 여행을 나만의 방법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아프리카를 다녀오고 나서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어땠냐고 물어봤을 때, 세렝게티 사파리의 경험은 최고였지만 다른 부가적인 요소가 너무 힘들고 불편했기에 "좋았는데 힘들었고, 다시 안 가도 될 것 같다." 정도로 일축하곤 했다. 내 여행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주관과 용기가 없었다면, 이전처럼 너무 좋았다고 꼭 가보시라고 포장해서 말하곤 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아직 인생여행지에 대한 답변에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인생 여행지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가장 힘들고 지칠 때 떠난 곳이 최고로 느껴질 수 있고, 누군가는 그곳에서 먹은 음식이 맛있었기에 최고라고 느낄 수도 있다. 큰돈을 들여 떠난 유럽 패키지여행보다 가볍게 놀러 간 관동팔경의 모습을 보는 게 더 좋았다면, 용기 있게 관동팔경을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 돈과 시간을 들여 떠난 여행인 만큼 나의 여행을 나만의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도 이제는 여행지에 대한 경험을 묻는 질문에, 조금은 더 솔직해지려는 용기를 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