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레오네의 수필집 #011
"유해발굴"이라 들어본 적 있는가?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의 찾지 못한 유해를 발굴하는 작업을 뜻한다.
오늘날 까지도 유해발굴을 위한 작업은 계속되고 있으며, 뉴스로도 종종 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군대에 있을 시절, 무더운 여름에 접어들 어느 6월에 불현듯 한 달간의 유해발굴을 하게 된다는 뜻밖의 소식이 들렸다. 그때까지는 몰랐지만, 군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한 달이 아닐까 떠올린다.
생각해 보라.
유해가 어디에 있을지 알고 발굴을 하겠는가?
지뢰처럼 금속 탐지기를 동원할 수도 없고, 묻혀있는 백골의 시신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는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남는 게 인적 자원인 군대라면 그 해답은 간단하다. 바로 산을 까보는 것이다.
'산을 깐다'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는가?
그렇다. 껍질을 벗기듯, 산을 통째로 삽으로 파보는 것이다.
아침 일찍, 삽과 곡괭이 등을 챙겨서 버스에 탄다.
높으신 분들이 와서 구경할 수 있도록 단체 티셔츠를 입는다.
"Bring them Home"
티셔츠 등짝에 적혀있던 문구다.
어떤 산에 도착한다.
우리가 이제 까게 될 산이다.
논과 밭을 지나, 50여 년 전 전투가 있었다던 산이다.
산에 오른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삽과 물을 들고 오르는 일은 당연히 쉽지 않다.
어느 중턱에 다다르면, 1m 간격을 두고 줄줄이 선다.
그리고 이제 올라가면서 산을 까내리게 된다.
절대 힘을 세게 줘서는 안 된다.
혹여나 유해가 있다면, 절대 훼손되면 안 되기 때문에
발목 높이까지 삽으로 파해치되 살살 파야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게 쉬운가.
흙을 까내리면 으레 돌멩이나 나무뿌리가 있기 마련이다.
첫 일주일 간은 그래도 살살 파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도 잠시, 어느덧 모두가 산을 까내리기에 급급해진다.
나무뿌리를 끊어내고 돌멩이를 파해쳐서 어떻게든 땅을 판다.
유해를 발굴하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 포상휴가가 주어진다는 말에
다들 그래도 열심히도 했던 것 같다.
정말 저렴하지 않은가?
월급 30만 원어치 200명으로 산을 까내리는 기적.
까도 까도 나오는 것은 50년 전의 건빵봉지, 우유갑, 라면봉지 등
학창 시절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썩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배운 기억이 있는데, 이걸 몸소 깨닫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유해는 나오지 않았다.
그럴 무렵, 내가 산을 파던중 뼈가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봐도 그건 사람의 뼈가 아니었다. 너무 작고 짧았다.
비닐봉지에 쌓여있던 뼈를 뜯어보니 작은 얼굴뼈가 발견되었고, 추측건대 강아지의 뼈로 보였다.
나름 뼈를 발견했다고 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도 했고, 간부까지 찾아와서 보고 가기도 했다.
뼈를 보고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기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포상휴가를 받을 수 있겠다는 흥분과 희망은 얼마나 짜릿했던가.
우리가 산을 까던 동안, 국방부 높은 사람들과 대학생들, 기자들도 다녀가곤 했다.
단체 티셔츠를 입고 열심히 산을 까내리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그렇게 단 하나의 유해도 발굴하지 못한 채, 우리들의 유해발굴 작업은 끝이 나고 말았다.
아마 그 산은 이제 다시 파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만으로 나름의 성과라면 성과일까.
전역을 하고 사회에서 간혹 유해발굴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일이 있다.
아는 지인은 국방부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홍보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기차역이나 대중교통에 유해발굴과 관련된 홍보물이 보이기도 한다.
사실 나로서는 그런 홍보물 뒤에 산을 두 손으로 직접 까내리는 수많은 군인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남들보다 그 홍보물에 눈길 한 번은 더 가지 않을까. 보다 애틋하고 뜻깊게 여기고 있진 않을까 생각한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유해발굴이란 것은 언제까지나 뜻깊고 숭고한 일임에 틀림없다.
내가 유해발굴을 하게 된 것은 절대 원한 것도 아니었고, 지원을 받았다 한들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치 않았지만 하게 되었고, 덕분에 유해발굴에 참여했다는 소중한 기억과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도 인정해 주거나 알아주지 않아도, 시간이 지난 지금, 적어도 그 숭고한 행위에 내 작은 노력이 보템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름대로 자랑스럽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는 미화되고 무뎌진다.
22살의 팔팔했던 나이에 몸이 힘들던 기억은 서서히 무뎌지고, 이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는 자부심만 남게 된 것 같다.
어쩌다보니, 우연치않게 숭고했던 일.
"Bring Them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