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향 May 09. 2020

노력하지 않은 자, 불평하지 말라

2020.5.8. 초보 골퍼의 일기ㅡ로드힐스 CC

작년 12월 초 라운드를 끝으로 6개월 만에 첫 라운딩을 다녀왔다.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전염되기 전인 2월 중반까지, 나는 연습장 드나들며 나비의 꿈을 꾸는 번데기처럼 꿈꾸는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로 인해 체육시설들이 문을 닫고 나는 갈 곳을 잃었다. 실내연습장이라 감염 위험이 높은 것도 있지만, 굳이 이런 시기에 무리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 쉬어가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나의 이런 결정과 달리 골프 업계는 때아닌 성수기를 맞게 되었다. 실외에서 연습하는 인도어 연습장은 연습을 하려는  대기자들이 줄을 서고, 전국 골프장은 부킹 잡기 어려울 만큼 이용객들이 많다고 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골프장 이용객들한테서 코로나 확진자 얘기가 없어서 다행이다.)


남들이 아무리 그렇게 하더라도 나는 동요되지 말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하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친구들은 종종 함께 라운딩 가자며 묻곤 했는데, 몇 번 거절했더니 다시 말을 꺼내지 않았다.

2월부터 4월 말까지 거의 3개월간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은 기본적인 홈트레이닝과 걷기뿐이었다. (수영장도 문을 닫은 지 오래고, 언제 다시 개장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어떻게든 체력이라도  단련해야 하는데 홈트레이닝 조차 건너뛰는 날이 많았다.


코로나도 잠잠해지고 드디어 5월 8일, 남춘천에 있는 '로드힐스 CC' 7시 26분 티오프를 위해 친구들과 동행했다.

연습장은 발도 못 들이고 남편이랑 휴일에 가끔 스크린 가서 클럽 잡아본 게 다인 나. 반면, 겨우내 레슨과 연습을 병행한 친구들. 어떤 광경이 벌어질지 충분히 상상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혹시 모르잖아. 유튜브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으니 잘 될 수도 있어. 너무 주눅 들지 말자!' 이런 뻔뻔한 생각이 삐죽 돋아났다.


두근두근 후들후들, 첫 티박스에 올라서는 순간 아득하게 펼쳐진 잔디가 망망대해처럼 느껴졌다. 내 발 앞에 놓인 조그마한 공 하나를 날려 보내야 한다. 힘껏 쳤는데 코앞에 톡 떨어지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픽 날아가 손 닿지 않는 덤불이나 물속으로 잠겨버리면, 그것도 아니면 헛스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윙윙 벌떼처럼 뇌리 속으로 달려들었다.

어색한 연습 스윙을 하고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을 때, 반사적으로 스윙을 했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작년 대비 엄청난 비거리를 자랑하는 친구들과, 가뜩이나 비거리가 짧은 나는 작년보다 더 많 거리 차이가 났다. 친구들이 드라이버 한 번으로 간 거리를, 나는 얼른 달려가서 우드를 한 번 더 쳐야 한다. 어찌어찌 공을 앞으로 보내긴 했지만, 18홀 동안 진땀깨나 흘려야만 했다.


고맙게도 친구들이 끝까지 배려해주고 다독여주어서 라운딩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친구들이 내게 들려준 말들을 다시 생각하면서 나의 골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ㅡ입문하고 몇 년 정도는  미친 듯이 연습해서 기본기를 익히지 않으면 잘할 수 없다.
ㅡ골프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 결국 잘하더라.
ㅡ손을 놓으면 다시 감을 찾는데 시간 많이 걸린다. 가끔씩이라도 연습하고 스윙이 해져야 한다.
ㅡ맘먹은 대로 못 치더라도 매 순간 한 타 한 타 정성을 다해 쳐야 한다.

ㅡ누가 뭐라 해도 마음 다치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나는 내 몸이 기억할 만큼 연습을 한 적이 없고, 내게 부족한 부분에 대해 문제점을 분석하거나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다. 타고난 운동 신경도 없는 사람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남보다 못한 실력을 탓하는 것 자체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어느 분야든 최고가 된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위치에 도달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피나는 노력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스윙을 갖기 위해 땀 흘린 사람들이 얼마나  멋는 사람들인지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 친구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이번 라운딩을 계기로 노력 없이 잘 되길 바라는 나의 사고방식을 수정해보려고 한다. 올 한 해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연습을 많이 할 계획이다. 주 3일 이상은 연습장 가서 익히고 기회가 올 때마다 라운딩을 갈 것이다. 만연 초보라는 딱지를 받고 싶지 않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골프지만 친구들과 편안하고 즐거운 라운딩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은 꼭 갖추고 싶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골프장에 대한 약간의 정보*


로드힐스 CC에 대한 소감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새벽 5시 30분쯤 출발해서 남춘천 IC 통과 후 바로 인근에 위치해서, 약 한 시간 좀 더 걸린 거 같다. 돌아올 때도 오후 1시쯤 출발했는데 차가 안 막혀서 비슷하게 걸렸다.(어디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남춘천 IC 바로 옆이라 춘천이라도 멀지 않은 느낌.)

양잔디이며 디봇이 너무 많은 걸 보면 잔디 관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거리가 짧고(레이디 티 기준) 좁은 편이었다. 해저드가 많아서 초보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곳에 비해 공을 많이 잃어버리게 된다. 실력 좋은 내 친구들은 아기자기 예쁘고  재미있는 골프장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겐 진땀 나게 어려운 골프장이다.



작가의 이전글 오래전 어린이날 풍경을 생각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