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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Sep 13. 2020

그분이 오셨다

알 수 없는 인생, 알 수 없는 골프

8월은 나의 골프 인생에서 특별한 달이다. 드디어 깨끗하던 클럽 페이스 정 가운데에 볼 자국이 찍히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이제 공을 좀 맞추게 되었다는 얘기다. 그럼 그동안 연습장에서 공 안 맞추고 뭘 했기에?


골프 입문 이후 네 명의 레슨 프로를 만나봤지만, 그중 누구도 내게 스윙궤도를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주 기본인 거 같은데 왜 제대로 안 가르쳐주었을까? 그럼 뭘 가르쳐줬냐고?


음... 힘 빼라, 머리 고정해라, 하체 잡아라, 체중 이동해라, 골반을 먼저 돌려라, 손목 코킹을 해라, 임팩트 순간이 중요하다, 백스윙 탑은 이렇게, 다운스윙 때 한시 방향으로 뻗어라, 인아웃 궤도로 쳐야 된다 등등. 모두 맞는 말이다. 가르쳐주는 대로 나름 부지런히 연습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한 팔로 공을 내려치고 만다.


처음 만난 레슨 프로한테 상처 받은 것이 트라우마로 남게 되었다. 내 돈 내고 배우면서,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게 되니 프로가 내 앞에 서 있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부담스러웠다. 짧은 레슨 시간이 아쉬워야 하는데, 당시 나는 얼른 지나갔으면 하고 조바심이 났다.


한동안 골프를 포기할까 하다가, 이왕 시작했으니 끝은 보자 싶어 다시 시작했다. 프로를 서너 번이 바꿔가며 배웠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그분이 오신다는데 내게 그분은  오지 않았다. 답답한 심정으로 물어보면 지인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했다. 그 시간이란 사람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2~3년은 걸린다는 거였다.  나는 늦되는 골퍼구나 생각하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2년이 지나면서 슬슬 걱정이 되었다. 안 돼도 이렇게 안 되나 싶고 도무지 답답한 내 속을 시원하게 뚫어 줄 프로가 없다니.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8월부터 새로운 프로를 만났다. 그분은 나의 답답한 심정을 듣고 나서 매일 차분하게 기본을 가르쳐주셨다. 먼저 스윙 궤도를 설명해주시고, 클럽 헤드가 공을 맞추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그다음에는 하프스윙으로 정타 맞추기 연습을 시켰다. 그러고는 어드레스 자세를 기존보다 더 낮추라고 했다. 한 달 정도 매일 연습했더니 신기하게도 공을 잘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드라이버만 맞나 했더니 다른 클럽들도 모두 잘 맞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거다.


드디어 내게도 그분이 오셨구나 싶어서 며칠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 다 죽었어!'라는 말을 남발하면서 날뛰니까 구력 20년 된 남편이 가소롭다는 듯 "더 지나 보면 알게 될 거야. 내가 왜 말이 없는지..." 한다. 쳇! 이럴 때 말이라도 곱게 해 주면 어때. 꼭 찬물을 끼얹고 마는 남편이 야속했다. 프로님도 내게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아마 그분이 앞으로 수십 번은 더 왔다 갔다 하실 겁니다. 마음 가라앉히시고 연습하세요!"


그분이 오신 뒤로 실제로 스코어가 엄청 좋았던 적이 있어서 지인들을 놀라게 했지만, 최근에는 또 예전이랑 비슷하다. 잘 될 때도 많지만 조금만 신경 안 쓰면 예전 샷이 나오고, 실수 연발이다.

"네가 손맛을 좀 보더니 힘 좀 들어가는구나!"

친구가 내게 해 준 이 한마디가 사무친다. 힘 빼고 편안하게 치라했는데, 나도 모르게 저 멀리 한방 날려보겠다는 마음으로 공을 치게 된다.  귀신같이 내 마음을 읽어낸다.


백순이 골퍼의 갈 길은 멀고 먼 고행길이 되겠지만, 이제 골프가 조금 재미있어졌다. 우리의 삶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듯, 골프도 잘 되다 안 되다 하는 거라고 한다. 잘 된다고 흥분할 일도  안 된다고 절망할 일도 없다. 요즘처럼 즐거운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수리수리 마수리! 드라이버 시원하게 빵! 날리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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