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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Sep 12. 2020

또 가을이 찾아왔건만

-때를 놓친 사진 한 장

언제 우리 곁으로 왔을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와 무더위를 보내고 찾아온  가을이, 저녁 8시가 넘도록 대낮처럼 훤하던 하늘이 6시만 되면 어둠에 휩싸인다.


내가 일 년에 네 번 정도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하는 때가 있는데, 바로 계절이 바뀌는 과정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절기의 절묘함'을 만나는 순간이다.

9월이 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가을이 여름 자리를 차지하고, 태연한 척 웃고 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쉼 없이 쏟아지던 비와, 마스크 속에 갇혀 땀범벅이 된 얼굴로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여야 했던 현실이 야속하다. 그래서인지 시원한 가을바람과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을 보노라면, 올봄부터 차례대로 잃어버린 우리들의 계절과 시간에 대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한강이 범람했을 당시, 잠수교 근처 나무들이 쓰레기를 휘감고 있는 모습을 찍어둔 적이 있었다. 물에 잠긴 한강공원에 물이 빠지고 산책로가 어느 정도 정비됐을 때 산책하러 가서 찍은 사진이다.  '저 나무 용케 잘 견뎌냈구나!' 싶었다.


 흙탕물 속에 잠겨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견뎌낸 저 나무처럼,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시간도 곧 지나가리라 믿는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저 나무도 다시 가을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듯, 조금만 더 견뎌보기로 자. 가을이 주는 위로의 말에 잠시 행복해져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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