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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은 Feb 26. 2022

I의 단어

심심





I: 작년부터 내내,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많았어요. 이렇게 해외에서 전시 제안도 받았고요.

나: 안 풀린다는 푸념은 여기저기서 늘 듣는데, 이런 이야기는 또 오랜만이네요.

I: 그게 걱정이라니까요.

나: 왜요?

I: 내가 운을 다 몰아서 쓰는 건 아닌가 싶어요. 내년부턴 재미있는 일이 없으면 어쩌죠?




얼굴을 찌푸리고 걱정을 토로하는 사람들과 달리, 그는 웃음을 한껏 머금고 투덜거렸다. “너무 좋은 것도 별로죠. 별 탈 없이 가는 게 최곤데!”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그의 동선은 컸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 도시와 저 도시를 가로지르며 I 님은 다채로운 풍경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그러나 자유로운 만큼 불안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 아니겠는가. 반가운 소식은 왔지만, 기쁨이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에 돌아가 클래스의 수강생을 모집하고, 그것으로 한 달 수입을 가늠하는 것이 그에게 근심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그의 삶에 오래오래,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을 것이다.


하염없이 밝기만 한 얼굴에 언뜻 불안으로부터 온 그늘이 비쳤다. 그렇지만 금방 푸른 얼굴을 되찾으며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I 님의 아버지는 수십 년 동안 명상을 하며 육식을 멀리 하셨다고 한다. 아삭한 소리가 울리는 초록빛 식탁을 앞에 둔 아버지. 류시화와 틱낫한의 글을 읽으며, 하나뿐인 딸의 번민과 고뇌를 찬찬히 들어주는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우리는 오래오래 들었다.




전문 읽기 : https://a-round.kr/i의-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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