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결국은 끝이 없는 것

[시네마에세이스트] 끝없음에 관하여 리뷰

by 모퉁이극장

끝이 없는 이야기들을 조각조각 이어붙여 보여준 <끝없음에 관하여>. 신이 넘어갈수록 제목에 공감이 커진다. 이 영화는 결말이 보이지 않는 작은 이야기들의 묶음이자, 일상이 언제나 연속적인 부분임을, 그것이 인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게 ‘끝없음에 관하여’라는 제목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끝없음에 관하여>를 보는 내내 가장 머릿속을 크게 지배했던 생각은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까’였다. 전개라는 것이 전혀 없는, 오로지 발단만 있는 것 같은 이야기들의 시작.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도 있으며, 조금은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끝은 어떤지 모두 알 수 없었다. 우리 인생도 어떻게 끝이 날지 모르지 않는가. 영화나 소설에서 끝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끝없음’이라면, 우리 인생도 ‘끝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는 시각적, 청각적, 언어적인 정보가 부여되어 있지만, 그것도 아주 적은 양의 정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 적은 정보를 흡수하고 증폭하여 다음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또 상상한다. 그리고 자꾸 예상을 벗어나는 또 다른 시작은 또 다른 시작을 기다리게 만든다. 서사가 거의 없는 작품임에도 이 영화가 즐거웠던 이유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가 됐기 때문이었다. 전개가 예측되지 않는 작품이기도 했기에 계속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신이 시작되고 나면 이 신의 중심은 어디인지, 주인공은 누구인지 바쁘게 찾게 된다. 그리고 나면 다음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꼭 다른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다.

여러 가지 소설의 첫 문장을 이어 붙인 것 같은 이 영화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형태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상, 그리고 우리가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었던 다른 일상들을 멀리서 객체로서 지켜보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영화에 몰입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인상적인 부분뿐이다. 또, 짧게 끊어가는 이야기들은 큰 집중을 요하지 않았고 스쳐 지나가는 신들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눈에 하나하나 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크게 와닿는 장면보다는 중간중간 기억에 많이 남는 부분들이 있다. 미술관에서도 기억에 남는 그림들이 몇몇 있지 않은가. 전시회를 영화화한다면 이런 느낌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크게 의도를 보여주지 않고서 그 속에서 관객들이 찾아 나가도록 하는 방식 자체가 그림을 보는 방법과 유사한 것 같기도 하다. 그 기억에 남은 짧은 단편영화들을 또 따로 묶어 몇 번 더 돌려보고 싶다.

인생은 일상의 연속이고 일상의 연속은 언제나 당연하다. 그것을 특별하게 영화로 접하다 보니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도 영화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림 안의 다른 세계를 보는 느낌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단순히 듣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을 보고도 곧장 등장인물의 감정에 각자의 방식으로 공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크게 다를 수 있을 것 같고, 그것 또한 그림을 관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영화가 더 그림 같았던 이유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는데, 카메라가 비치고 있는 구도에서 사람만이 움직여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보통은 인물을 중심으로 촬영하지만, 이 영화는 장소를 중심으로 촬영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드는 영화다. 균형미가 돋보이는 수평의 맞춤 등은 관객에게 안정감과 동시에 짜릿한 전율을 전해주는 것 같다. 보는 내내 ‘어떻게 저런 구도로 촬영할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을 많이 했다.

<끝없음에 관하여>에는 블랙코미디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어 중간중간 지루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사람의 인생에 대해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본인의 상황이 아니면 완전히 몰입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 단편의 묶음은 깊이 들어갈 수 있는 빌드업 루트를 원천 차단하고 관객과 거리를 두고 있는 영화 같다. 어떤 사건이든 발단이 있으면 전개가 있기 마련임에도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은 관객에게 다른 일상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문제가 있는 상황들 또한 관객들에게 생각할 실마리를 부여한다.

이야기가 끝이 없는 채로 시작만 하는 이 영화는 정말 ‘끝없음’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것 같다. 종결되지 않는 이야기는 어디선가 진행되고 또 종결되면 새로운 이야기로 시작을 할 테다. 인생은 계속 시작하고 끝이 나며 다시 시작하기를 무한 반복한다. 끝나는 순간 의지대로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인생은 끝없는 시작의 연속이다. 계속 시작하는 것이 일상이다.

인간이 하는 각각의 사고방식이 녹아든 <끝없음에 관하여>는 내가 어떤 누군가의 일상이든 중심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내 일상만이 중심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제는 중심, 또 언제는 구석으로 밀려날 때도 있다. 그래도 세상에는 아주 많은 중심이 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중심이 어디인지 생각하는 것도,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나의 중심도 어딘가에서 단단하게 잡는 것이 필요하다. 인생은 끝이 없으니 충분히 그걸 연습할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본 리뷰는 시네마에세이스트 최현지님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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