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억, 마음의 편린들」상영작 리뷰와 아트포스터
장태구 감독의 첫 장편영화 <모아쓴 일기>는 때로는 홀로, 때로는 함께 청춘을 살아가는 네 친구의 일상을 그린다. 변화하는 한국 사회 속 경환, 주대, 연우, 그리고 연락이 두절된 성우는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기억하고 서로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 있는 듯하다. 감독은 다양한 인물들과 늘 어디선가 나타나 위로를 건네는 고양이들을 자신이 애정하는 부산의 공간에 모아, 그 만남의 실선들을 카메라에 기록한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오가는 이 영화는 사계절을 거쳐 이들의 「일상, 기억, 마음의 편린들」을 담아낸다.
봄, 여름, 가을, 겨울만큼이나 다른 네 명의 친구들은 함께 쌓아 온 과거를 품은 부산 곳곳을 기록한다.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오리온 자리 같은 여드름이 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고, 크림파스타와 닭볶음탕의 다소 당황스러운 조합을 먹어보고, 얽히고설킨 추억을 지키기 위해 멀어져 가는 친구를 향해 먼저 손을 내밀어본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밀려오는 미래 앞에 경환, 연우, 주대, 그리고 성우는 각자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네 명의 친구에 관한 ‘모아쓴 일기’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적는 성우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별다른 계획 없이 알바를 하고 시를 적으며 고양이를 돌보는 경환, 남들에게 의존하는 자신을 바꾸기 위해 상담을 받으며 독일로 유학 갈 준비를 하는 주대, 그리고 친구들 중 제일 안정적으로 자신의 미래에 임하여 뉴스기자로 활동하고 공부를 이어가는 연우. 한 번도 세 친구와 함께 프레임에 등장하지 않는 성우가 자신의 상상 속 친구들의 모습을 그려내는 듯, 스크린에 떠오르는 장면들은 현실의 선형적 전개에서 벗어난다. 또한, 영화의 자기 지시적인 면은 성우를 연기하는 배우 외에 비전문 배우인 감독의 실제 친구들의 연기에서 한 층 더 도드라진다. 막연한 재현이 아닌, 배우들이 직접 살고 있는 현실을 영화적으로 번역한 구성은 보는 이들의 공감대를 훨씬 가까운 곳에서 형성할 수 있도록 한다.
어딘가 다소 어색하고 투박하게 모인 그들의 뒤얽힌 나날 속에는 진솔함이 묻어난다. 감독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의 긴 촬영을 이어 오며 주인공들이 자주 다니는 부산의 특정 공간에서 목격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들을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너무나도 흔한 재개발 현장과 쉴 새 없이 인상하는 집세부터, 온천천에서의 선거운동과 세월호 2주년을 추모하는 버스킹 현장, 또다른 시작을 향해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과 취업준비를 하는 이들로 붐비는 도서관, 골목길에서 일어난 데이트 폭력과 이에 관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전시까지.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백그라운드나 엑스트라로 정할 법한 주변적 사건과 오디오는 소리가 낮춰지거나 초점이 흐려지지 않은 채 생생히 전달된다. 주인공의 옆 시선을 따라 프레임의 끄트머리에 잡힌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이들,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공유하는 이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며 자신의 취향을 처음으로 알아가는 이들. 주인공들만큼의 균등한 무게감을 지닌 다른 젊은이들의 모습을 통해 감독은 20대 청년들이 행사하는 자율성의 형태를 다양화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퀀스는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을 새롭게 계발하기 위해 하루를 나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구현한다.
한 발자국 물러선 곳에서 이 장면들을 경험하는 성우, 혹은 영화 속 ‘모아쓴 일기’의 감독은, 고립된 자신의 모습에서 시작해 친구와 가족과 고양이들, 타인들의 세계에 공존하는 자신의 모습에 도달한다. 성우는 자신을 둘러싼 광경들에 둔감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20대라는 세대를 경험하고 있는 이들은 공감할 수 있을 집단적 주체성과 독립된 주체성 사이의 방황이 자리 잡고 있다. 영화의 끝 무렵, 프레임에는 성우만 남겨진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린 시나리오의 페이지들을 바다에 흘려보내며 성우는 다시 어떤 시간과 사람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온전한 자신만을 마주하려한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79분의 장편영화는 청춘에 대한 어떤 사상을 그려내거나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편린들이 모여 만들어진 이야기 속에 잠시 숨을 돌린다. 자전거를 타고 친구들과 아무 이유 없이 웃으며 지나갔던 벚꽃 날리는 길을, 다시 찾아온 봄에는 성우는 혼자서 그 풍경을 묵묵히 바라본다. 똑같이 반복되는 날 없이 불확실한 미래로 전진하는 일상 속에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짙은 밤, 내일은 어떤 새로운 하루를 지내볼지 떠올려본다.
(디펜더스 리뷰단 류다연)
2020년 11월 8일 인디펜던시아2020 섹션 5 상영회 / BNK부산은행아트시네마 모퉁이극장
류다연 -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아도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영화를 해석하는 것처럼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는 영화 리뷰를 많은 분들과 공유하며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에 인디펜던시아2020은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퉁이 극장 SNS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저희 청년크리에이터 디펜더스의 활발한 활동이 기록되어 있으니 확인해주세요!! 그 동안 상영회에 찾아주신 분들과 상영작 리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