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김민주
* 이 글은 영화 <헤어질 결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네가 내 이름을 불러줬을 때 믿어왔던 모든 게 무너진 거야.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어.”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난 후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던 노래의 한 대목이다. 권진아의 <뭔가 잘못됐어>. 자꾸만 뭔가 잘못됐다고 되뇌는 이 노래는, 무너지고 깨어진, 즉 완전히 붕괴되었다고 말하는 이 영화는 내게는 사랑이 아니지 않을 수가 없다. 모두 낱낱이 사랑인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흔히들 어떤 일을 알고 나면 그 이전으로는 돌아가기 힘들다고 말한다. 내게는 사랑이 그렇다. 한 사랑을 경험하면 도무지 그 이전으로 돌아갈 방도가 없다. 모래사장의 한낱 먼지가 되어 그저 끝없이 밀려 들어오는 파도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마는 것이다. 꼿꼿했던 서래가, 자부심으로 품위를 지키며 살아가던 해준이 그렇게 무너졌듯이, 사랑은 누군가 무너짐으로 내게 다가오기도 하며 나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나는 붕괴된 적 있을까. 실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붕괴된 적이 없다. 감히 헤어질 결심을 해본 적도 없다. 나는 나를 너무나 사랑해서 상대방을 위해 무너질 수 없는 인간이었다.
사랑을 하며 매번 깨닫는다. 나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인간임을. 내 안에 사랑이 없음을 마주한다. 사랑 앞에서 셈을 따지는 모습을 보며, 온전한 나를 죽이며 희생하기 주저하는 모습을 보며, 나를 우선순위에 두는 걸 보며, 사랑 없음을 철저하게 온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나는 자주 아프다.
마침내 자신이 죽음으로써, 해준의 완전한 미결 사건으로 남은 서래는 그렇게 자신의 사랑을 완성했지만 어리석은 해준은 자신의 발아래에 있는 사랑을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서래가 아닌 해준이었다. 지혜로운 바다로 나아가지 못하는, 헤어질 결심을 아직은 하지 못하는 비겁하고 겁이 많은 사람.
받는 사랑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며 공허한 소리를 외치곤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하지만 해준이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모든 행동이 사랑이었던 것처럼, 사랑은 늘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핸드크림을 발라주고, 잠 못 드는 당신 밤의 안녕을 빌어주고,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가며 당신의 언어를 배우는 것, 모두 사랑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붕괴되는(사랑하는) 서래와 해준을 보며 웃기지만 위로받았다. 어설프지만 무너지고 깨어졌던 내 사랑의 행동에 이해받는 기분이었다. 사랑의 깊숙한 곳을 파헤쳐보면 응당 그러한 모습일 것이기에.
언젠가 나도 사랑 앞에서 완전한 무너짐을 경험할 수 있을까. 아직은 너무나 꼿꼿하고 공고한 나인데 말이다. 내게도 헤어질 결심을 하는 순간이 찾아오길 바라며. 마침내 감당할 수 없는 파도에 휩쓸려 하릴없이 바다로 떠나가게 되는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