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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퉁이극장 Oct 28. 2022

내 허영의 유통기한

영화 <중경삼림>을 보고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해정

스무 살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었다.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은 어린 취급을 받기 일쑤였고, 나는 성숙한 매력을 가진 어른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유행하는 스모키 화장은 어색하고, 길게 기른 머리도 여 성적이지 않았다. 외모가 노력으로 변하는 시간보다, 내면을 어른스럽게 만드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내면이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겠다는, 나도 모르게 해버린 결심은 지적 허영심을 가지게 했고, 사랑도 가슴이 뛰기 위해서 이성적인 판단을 먼저 주입시켰다.

성격 좋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표면에 내세웠지만, 외모는 기본, 거슬리지 않는 말투와 박식함을 가진 연애 상대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연애를 하면서도 머릿속의 이상형은 크기만 하니, 눈앞의 연인에게 충실하지 못했다. 내가 바라는 게 늘어날수록, 상대와 어긋나는 일이 많아졌고 스물아홉이 될 시점에는 ‘결혼 따위 아무나 하고 하면 어떠냐!’고 외치는 솔로가 되어 있었다.


사랑에 상처받으며 배운 한 가지는 상대방도 나와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상대방도 진심을 느끼게 되고, 나도 모르게 조건을 찾고 있다면 상대방도 나에게 더 많은 요구를 했다. 욕심을 내는 일에 지쳐버린 어느 날, 우연히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연애와 결혼, 육아와 학부모 같은 단계를 평범하게 거쳐 가는 나는 아직도 허영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저 그런 아줌마는 되지 않겠다는 마지막 자존심.

지적인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내 허영의 유통기한은 매일매일 갱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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