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중경삼림>을 보고 작성한 에세이 입니다.
박기영
대학 시절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집까지는 자전거로 5분 걸어서는 10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이었다. 퇴근은 11시, 천천히 걸어도 11시 15분에는 집에 도착했다. 그런 퇴근길이 언젠가부터 점점 길어지기 시작해 새벽 2시, 3시나 되어서 집에 도착하던 때가 있었다.
언제였을까,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담배가 떨어져 들어간 편의점에 네가 있었다. 몇 마디 인사와 잡담을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학교에서 널 만났을 때 이전보다 더 편하게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아르바이트하러 갔고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긴 시간 잡담을 하다 헤어졌다. 그렇게 종종 퇴근 후에 우리는 편의점에서 만났고 학교에서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길어졌다. 편의점에 가는 날이 늘어나고, 어느덧 나의 밤은 너를 만나는 밤들과 너를 만나지 못하는 밤들로 나누어졌다.
어느 날 밤. 퇴근 후에 담배를 피던 나는 자전거를 놔두고, 항상 가던 길도 놔두고,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특별히 갈 곳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고, 몸도 피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걸었다. 시간은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평소보다 더 늦장을 부리며 나를 괴롭혔고 모기들은 몸 주위를 맴돌며 집으로 가지 않는 내게 의문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내 스스로도 집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기각당했고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밤거리를 걷다 자정을 조금 앞둔 시간, 나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담배가 떨어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네가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담배를 피고, 몇마디 잡담을 나눈 후 조금 같이 걷다가 헤어졌다. 그날부터 내 퇴근길은 조금씩 길어졌다. 어느덧 우리의 퇴근길은 네가 사는 집을 지나, 강변을 걷고, 공원에 들러 그네를 타고, 불빛이 없는 논길을 걷고, 이곳저곳을 빙빙 돌며 어느새 두 시간, 세 시간. 서로가 서로에게 더 돌아다닐 핑계를 찾아 밤거리를 걷게 되었다.
별이 쏟아지는 밤이 있었다. 같이 가자던 친구들을 모두 떼어놓고 홀로 어두운 논길 한켠에 누워 별을 보던 내게 연락이 왔다. 혼자서 별을 본다는 내 대답에 너는 선뜻 함께 보자며 내게로 왔고, 우리는 떨어지는 별을 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을 불태우며 별들이 떨어졌고 우리의 대화는 감탄사들에 의해 자주 중단되었다. 밤하늘은 자신을 보라며 몇 번이고 밝게 불타올랐지만, 나는 밤하늘을 보지 않고도 별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네 얼굴이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사랑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밤하늘을 불태우던 별들이었을까, 우리가 함께 걷던 길들이었을까. 홀로 밤거리를 걸으며 들여다보던 시계였을까. 편의점 카운터를 사이로 인사들이었을까. 아니면, 그 모든 순간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