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때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는
결혼을 하고 나서 한동안 육아를 하느라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 남매들이 좀 크고 나서 일을 다시 한다고 하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이렇게 물어봤다고 한다.
‘와 이서방이 니보고 일하라 카드나’
엄마가 내게 그 이야기를 해주던 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내가 퇴근 후 아이를 데려가기 위해 엄마집에 들렀던 날이었다.
지친 내 모습을 보며 과거의 엄마 모습이 보였던 걸까? 엄마는 묻지도 않은 과거의 이야기를 해주며 한참을 그 기억 속에서 헤매는 듯했다.
‘엄마가 젊었을 때 다시 일한다니까 외할머니가 이서방이 일하라고 했냐고 묻더라니까.’
‘아빠가 진짜 엄마한테 일하라고 했어?’
‘아니,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였는데 할머니는 내가 안쓰러웠던 건지 그렇게 물어보더라고’
그러고 나서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안 돼 보였나 봐... 막내딸이 시집가서 일하러 나간다 하니...'
우리 엄마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결혼 후에 일을 그만두고 육아나 집안일에 전념하던 세대의 마지막쯤에 있었다.
당연히 할머니 세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시선에서는 어린아이들을 두고 다시 일하러 간다는 엄마가 그저 안쓰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생각 끝에는 혹여나 사위가 고생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형편이 나빠진 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덤으로 있었던 것이다.
분위기가 축 가라앉자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우리 오빠도 나보고 일하라고 안 했어~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아깝잖아'
'그래 너는 아깝지, 공부도 잘하고 이렇게 잘 키워놨는데'
그 말에 나는 또 한 번 눈물이 날 뻔했다.
엄마의 그 말속에 '나는 우리 딸처럼 많이 배우지는 못해서...'라는 말이 있는 것 같아서.
내가 아깝다고 말한 뜻에는 물론 대학을 나와 공부를 한 게 아깝다는 뜻도 일부 있었지만
이 젊음이 아깝다는 뜻이 더 컸다.
아직 쌩쌩하게 잘 돌아가는 내 머리가 너무 아까워서
아직 팔팔하게 잘 돌아다니는 내 체력이 너무 아까워서
그래서 나는 일하러 나가겠다고 다짐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육아를 해보니 다시 일하러 간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다시 일하고 싶다는 결심에는 한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의 젊음이 아깝다는 것도 있었고 갑작스럽게 단절돼버린 경력에 미련이 남기도 했다.
또 조금 더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고 싶은 이유도 있었고 소위 말하는 요즘 젊은 엄마들처럼 엄마로서가 아닌 나로서의 삶에 살아가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엄마가 왜 다시 일할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 이유가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는 걸 수도 있다.
삼 남매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찼을 엄마의 청춘에 우리의 투정이, 철없음이 짐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집, 더 맛있는 음식, 더 많은 추억을 안겨주느라 다시 일해야겠다고 다짐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우리 삼 남매를 키우느라 흘러가버렸던 엄마의 청춘, 우리 삼 남매는 그 청춘을 먹고 컸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빠가 말했다.
'그러게 왜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았어'
우리는 모두 그 뒤에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한 구절처럼 슬픔을 굳이 찾으러 다닐 필요는 없을 테니까
대신 우리는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 이야기를 하고 엄마 아빠는 손주의 재롱을 보며 다시 크게 웃는다.